정민준
[한국심리학신문=정민준]

감정을 '배우는' 교실의 탄생
"괜찮아"라는 말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교실. 수행평가 점수는 오르는데 마음은 점점 무너지는 학생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감정 훈련'이었다.
게임으로 마음을 배우다
서울대학교 채선미·현명선 연구팀의 실험은 파격적이었다. 상담실이 아닌 체육관에서, 조용한 대화가 아닌 풍선배구와 감정 빙고 게임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치료한 것이다. 「고등학생을 위한 긍정심리학 기반 정신건강증진 프로그램의 효과」(2020, Child Health Nursing Research)에 발표된 이 연구는 놀이·게임·운동을 결합한 수업이 학생의 심리적 안녕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경기 지역 고등학생 47명을 대상으로 8회기, 4주간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상담 중심 접근과 달리 체험 활동을 통한 감정 학습을 중점으로 설계되었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풍선배구, 감정 빙고, '감정 온도 100℃ 발표회', 말판 게임 등 다양한 놀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감정을 몸으로 경험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채선미 교수는 "청소년들은 추상적 개념보다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활동에서 더 깊은 학습을 경험한다"며, "감정을 억제하거나 제어하기보다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능력 자체를 기르는 것"이 프로그램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감정 빙고'에서는 학생들이 '기쁨', '분노', '수치심', '자랑스러움' 같은 감정 단어로 빙고판을 구성하되, 각 단어를 선택할 때마다 자신이 그 감정을 경험했던 구체적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감정 인식 → 감정 표현 → 감정 조절의 3단계 훈련이 이루어지며,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수치로 증명된 감정 훈련의 효과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군의 심리적 안녕감 점수는 프로그램 전 평균 179.21±31.14점에서 프로그램 후 186.50±30.19점으로 상승한 반면 대조군은 오히려 180.96±27.41점에서 176.70±27.35점으로 감소했다. 두 집단 간의 변화량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t=2.34, p=.024).[심리적 안녕감: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느끼며, 자신에 대한 수용·자율성·타인과의 긍정적 관계 속에서 내적 평온과 성장을 경험하는 상태]
흥미롭게도 우울감과 자아존중감에서는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일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단기 프로그램의 특성상, 임상적 우울이나 자아존중감의 근본적 변화보다는 긍정적 정서 상태의 활성화가 더 중요한 성과"라고 해석했다. 긍정심리학의 핵심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발견하고 키우는 것이며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회복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조군의 심리적 안녕감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반적인 학교 환경에서 고등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학 입시 부담과 경쟁적 학교 환경이 학생들의 심리적 안녕감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의 필요하다.
몰입(Flow)이 만드는 마음의 운동량
강민수(2019)의 연구에 따르면 긍정심리학 기반 정신건강증진 프로그램은 일반 대학생의 심리적 안녕감과 낙관성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키고, 우울감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프로그램은 셀리그먼이 제시한 '즐거운 삶(pleasant life)', '몰입하는 삶(engaged life)', '의미 있는 삶(meaningful life)'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실습 형태로 구성하여, 학생들이 감정 일기쓰기·감사 표현·강점 탐색 등의 활동을 통해 행복감을 직접 체험하도록 설계됐다.
참여자들은 프로그램 이후 일상에 대한 인식과 심리적 반응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민수(2019)의 「긍정심리학 기반 정신건강증진 프로그램의 효과성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일상 속에서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전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행동적 변화가 관찰되었다. 이는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다’는 수준을 넘어서, 정서적 회복탄력성과 자기수용 능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몰입하는 적극적인 삶(engaged life)’ 영역에서는 학생들이 과제나 활동에 몰입할 때 주의 집중력이 향상되고, 시간에 대한 왜곡 경험(몰입 현상)이 더 자주 보고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신의 역량과 도전 수준의 균형이 맞추어졌을 때 나타나는 몰입(flow) 상태의 특성과 일치한다. 즉, 긍정심리적 접근이 학생들에게 자기 조절적 학습경험을 가능하게 하면서 학업 상황에서의 스트레스 인식도 완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의미 있는 삶(meaningful life)’ 영역에서는 참여자들이 개인의 가치관과 목표의식에 대해 더 깊게 성찰한 결과,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성취를 넘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연계성을 인식하게 된 것으로 분석됐다.
정리하자면, 긍정심리학 기반 프로그램은 단기적인 정서 회복을 넘어 자기인식, 자기효능감, 의미 추구의 세 축에서 학생들의 심리적 발달을 촉진한 학습 환경적 자극으로 작용한 것이다.
감정을 훈련하는 시대의 새로운 교육
긍정심리학 기반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위로'가 아닌 '훈련'을 제공한다. 시험 점수 대신 감정 표현을, 경쟁 대신 몰입을 강조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진짜 능력을 키워간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선다.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역량이 되는 시대에서, 긍정심리학 기반 교육은 학생들이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진정한 내적 자원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자원이야말로 어떤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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