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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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 집단상담 '사이코드라마'를 경험하고
  • 기사등록 2025-12-18 08: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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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학교생활을 하면서 심심치 않게 마주치던 ‘사이코드라마’ 참여 모집 현수막. 언젠가 한 번은 꼭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올해야말로 그 오랜 염원을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사이코드라마'라는 제목 자체가 나에게 워낙 자극적이었다. 심리학도이면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지나치기 쉽지 않은 제목 아닌가? 그렇게 '어떤 걸 하게 되겠지~'라는 대략적인 청사진도 갖지 않은 채로, 나는 쏟아지는 비를 뚫고 공지받은 장소로 향했다.


사람들이 다 모이고 프로그램이 시작될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꼭 조용한 카페에서 바로 앞에 앉아있는 상대방에게 조곤조곤 얘기하는 투로 우리에게 '사이코드라마'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정확히는 사이코드라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아니었다. 그거는 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고, 그것보다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시간이 될 것인지를 얘기해주셨다. 당연히 갑자기 선뜻 믿음이 가거나 기대가 생기지는 않았었다. 그냥 원래 이런 활동들은 좋아하는 편이니까. 이제 와서 집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니까. 하는만큼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에 대한 동의서, 비밀 유지 서약서 등을 작성하고 나서 우리는 명찰부터 만들었다. 종이에 매직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그것을 목에 걸었다. '그럼 이제 자기소개를 하려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앞으로 한 시간은 앉을 일이 없다며 의자부터 치우자고 했다. 그렇게 약간 '다소 활발함을 유도하는' 워밍업이 시작되었다.


보통 이런 프로그램에는 '단계'라는 게 있다. 서로 신상정보를 포함한 자기소개를 하고, 정해진 주제로 얘기해 보는 시간을 좀 가지고, 그리고 같이 무언가를 하며 어색함을 푸는, 그런 단계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기소개 같은 건 없었다. 명찰에 적은 이름을 굳이 다시 말하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 서로 무언가를 얘기하는 건 하긴 했는데, 그것보다 먼저 춤을 추었다. 각자가 원하는 동작으로 춤을 추고, 모두가 그것을 따라해보았다. 화나거나 슬펐거나 기뻤거나 포근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것에 맞는 발걸음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난데없이 '세탁기 속의 빨래가 되었다고 생각해라'라는 지시에,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가운데에 뭉쳐서 빙빙 돌아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은 표정들도 좀 보였다. 그래도 어쨌든 몸을 움직이니까 살짝 덥고, 상기되고, 나쁘지 않았다. '어색함을 풀어 활발하게 해주겠다.'가 아니라 '활발하게 해서 안 어색하게 해주겠다.' 같은 전략인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위밍업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신문지를 한 무더기 가져오셨다. 우리는 한 장씩 그것을 나눠 받고, 신문지 방망이가 되도록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돌아다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을 얼굴 제외하고 어디든 한 대씩 때리는 활동을 하였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있는 힘껏 때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톡!' 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턴이 종료되고, 이번에는 가위바위보를 하지 않고 그냥 마주치면 때리라고 하였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 큰 어른들끼리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가도,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 신문지가 접혀서 힘을 잃을 때까지 사람들을 때리고 다녔다.


이번에는 '찢어버리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서 신문지를 찢어버리라고 하셨다. 순식간에 교실은 고요해지고 신문지가 벅벅 뜯겨 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교실 가운데에는 신문지 조각들 무덤이 생겼다. 모든 신문지를 다 찢고, 팀을 두 개로 나눠서 신문지 눈싸움을 진행했다. 뭉쳐서 던지면 안 되고, 막 뿌리지 말고 한 번에 한 조각씩만 던지라는 조건이 있었다. 전자는 나름 지켜졌는데 후자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던지는 게 아니라 손으로 조각들을 퍼서 상대 진영의 뒷편으로 흩뿌리는 싸움이 이어졌다. 앞선에선 정신없이 그러다가, 다시 우리 팀 뒤쪽으로 가서 뒤에 흩뿌려진 신문지를 모아서 다시 앞으로 가지고 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닥만 보며 신문지를 줍고 던지다가 문득 비스듬히 위를 봤는데, 공중에 신문지 조각들이 흩날리고 있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일도 아니고,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일도 아니지만, 갑자기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는 것보다 보기 힘든 풍경 아닐까? 적어도 대학교 강의실에서는? 익숙한 강의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 급한 와중에 비스듬히 올려다본 천장, 공중에 느긋하게 흩날리는 신문지 조각들, 내가 힘을 주어 던져도 멀리 가지 못하는 조각들, 바닥에 착지하지 못하고 몇몇의 등과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조각들, 말소리와 숨소리에 뒤엉키는 종이가 낼 수 있는 효과음들, 손가락의 지문을 따라 검게 번진 신문지의 잉크 혹은 먼지. 그 때는 '나쁘지 않네.'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글을 쓰며 돌아보는 지금, 분명 이 때가 '오늘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던 첫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직접 촬영했던 사진



"인생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모든 워밍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저런 질문을 우리에게 하셨다. 다시 살아보고 싶은 순간?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건가? 지금의 기억과 인지능력을 가지고 돌아가는 건가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뉘앙스가 아니라, '후회되는 순간'에 조금 더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꼭 어떤 '순간'이 아니어도 좋았다. 주인공을 하겠다고 용기를 낸 사람이, '나는 이런 사람인데(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데), 내가 왜 이렇게 됐냐면, 이런 환경이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리고 특히 이런 에피소드가 뇌리에 박혀있다. 근데 그 때는 어려서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했었지만, 나는 사실 그 때 이렇게 하고 싶었다.' 싶은 부분을 재경험하는 활동을 했다.


극은 주인공과 선생님이 이끌어 나갔다. 주변 인물들도 전부 주인공이 정했다. "아버지 역할 할 사람?"이 아니라, 주인공이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당신이 우리 아버지 역할을 해주세요."라고 요청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꼭 '사람' 역할만 맡지는 않았다. 주인공의 자아가 혼란스러울 때는 'A라는 생각을 하는 자아'와 'B라는 생각을 하는 자아'를 분리해서 맡기도 했고, 주인공 마음속에 있는 천사 또는 악마가 되기도 했다. 어떨 때는 여러 명이 함께 팔짱을 껴서 '특정 사회라는 집합체', 또는 '운명의 벽' 그 자체가 되어보기도 했다.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직면하지 못할 때는 다른 누군가가 아예 주인공 역할을 대신하고, 진짜 주인공은 제3자가 되어 그 상황을 바라보기도 했다. 에피소드를 재구성하고, 추상적인 감정과 내적인 세계를 가시화하는 부분은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발휘해주셨지만, 그것이 정말 주인공의 마음 상태와 비슷한건지를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확인받아주셨다.


어린 시절의 외상과 결핍은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치명적이다. 거의 평생 남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보는 창문을 만들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만든다. 우리는 세상을 절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다 각자의 창문을 통해 '나는 이런 존재, 타인은 이런 존재'라는 틀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경험하는 세상을 '해석'해 나간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힘이 없다. 부모에게 의존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만족스러운 애정을 받고 평온하게 자라왔다면 그것은 축복이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우리는 나름대로의 '비뚤어진' 생존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화를 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분노를 홀로 삭히고는 한다. 해결되지 못한 분노는 쌓이고 쌓여 나 자신에게로 향하거나, 한 마리의 괴물이 되어 내 안에 남기도 한다. 아무리 애정을 갈구해도 얻을 수 없다면, 나 자신을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체념해 버리기도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부모가 그건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고 자꾸 억압해버리면, '정말로 내가 이상하고 부당한 사람인가.'라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


이번 '사이코 드라마'는 그 모든 부당했던 억압과 태도에 대해 반기를 드는 시간이었다(꼭 부모 얘기만 나오는 자리는 아니었다. 사연은 다양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저항하며 내 안에 있던 응어리를 꺼내 마주하고 어루만져주는 시간이었다.


사람을 때릴 수는 없으니 이번 극에서는 의자가 대신 맞았다. 여러 명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그 의자는 결국 마지막에 고장나서 버려야 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우리가 감히 하지 못했던 격한 감정을 표출하며,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며, 그 순간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딴 식으로 살지 말라고, 당신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 모양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꺼지라고. 내 인생에서 꺼지라고. 이 세상 어디서도 쉽게 내뱉지 못할 말들을, 인정받기 어려운 감정들을 여기서는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었다. 꼭 무언가를 때리고 욕했던 것 뿐만 아니라,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면 팔에 멍이 들 정도로 세게 잡고 끌며 제발 이쪽으로 와달라고,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울며 애원하기도 했다.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절대 쉽게 져주거나 끌려가지 않았다. 주인공이 악을 쓰고 기를 써서 성취할 수 있도록. 끌려지면 다시 뒤로 가지는 않았지만 쉽게 끌리지 않도록, 쉽게 놓치지 않도록 손이 저릴 정도로 붙잡고 있었다.


참 신기하고도 별세계 같았던 이틀이었다. 30분 전에 함께 점심을 먹었던 동료가 지금은 무대에 올라 펑펑 울고 있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그 무대가 끝나고 나면 그런 아픔 같은 건 없는 사람인 마냥 내 옆에 앉아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한테는 "너는 진짜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구김 없는 성격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세상에 강하고 찬란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온갖 상처를 받았음에도,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자신의 창문이 비뚤어졌음을 직시하고, 그것이 왜 비뚤어졌는지를 고뇌하고 알아내며,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며, 자신이 미워해야 할 대상과 그렇지 않아야 할 대상을 구분하고, 그렇게까지 사람에게 상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두렵고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더 사람을 있는 힘껏 믿고 사랑하며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난 이틀 동안 만나고 왔다.


어떤 상처를 극에서 표출하던 모두가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한 명의 극이 끝나고 나면 원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는데, 꼭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공감해 주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응원해 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용기를 얻고, 또 서로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의 행복을 이토록 진심으로 빌어본 적이 있었나. 여기서 만난 우리 모두가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신과 같이 강하고 멋진 사람들을 앞으로의 인생에서 많이 만나며,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아름다운 색으로 덧칠하고, 덧칠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만들어진 창문은 너무나도 강력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그런 예시에 해당하는 좋은 사람들만 앞으로는 경험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에 미워하는 것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게 더 많아지고, 강력해졌으면 좋겠다. 다들 멋진 사랑을 하고 살아가면 좋겠다. 모든 걸 이겨내고 살아가는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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