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 ]
출처 : 핀터레스트
취향과 관심사는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 오래가는 관계가 있다. 그 친밀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따져보면, 공통의 취향보다는 공통의 불편함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같아서가 아니라, 싫어하는 것이 같아서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취향이나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할 때 관계를 쌓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진행된 『Interpersonal Chemistry Through Negativity Bonding』 연구는 이 직관에 의문을 던진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을 나누어 같은 대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한 집단과, 부정적으로 평가하도록 한 집단을 비교하여 실험을 진행했다. 이후 상대에 대한 친밀감과 호감을 측정한 결과, 부정적 태도를 공유한 집단에서 오히려 더 높은 친밀감과 호감이 나타났다.
함께 좋아하는 것보다, 함께 싫어하는 것이 관계를 더 빠르게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 유대(negative bonding)라고 부른다.
부정적 유대란 타인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공유하며 형성되는 친밀감을 의미한다. 이 관계는 상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생기기보다, 공통의 반감이나 불만을 매개로 만들어진다.
함께 싫어하는 것을 공유할 때 낯선 사람과도 더 쉽게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보여준다. 부정적 공유가 강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군가를 함께 험담하는 순간, 관계는 즉각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구도로 재편된다. 이는 심리적 안전감과 연대감을 동시에 높이고 신뢰를 강화한다. 또한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상대의 가치관을 빠르게 드러내는 정보이기 때문에, 상대를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압축된 정보는 상대에게 마음을 열게 만들고, 관계 형성의 속도를 크게 높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대가 장기적 관계의 건강에는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정적 상호작용이 단기적 친밀감은 높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정신건강과 웰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부정적 유대로 시작된 관계는 신뢰가 취약하다. 함께 험담을 나눈 기억은 언젠가 “이 사람은 나에 대해서도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의심으로 돌아온다. 관계는 가깝지만,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반복되는 부정적 상호작용은 우울, 불안, 신체적 스트레스와 연결될 수 있으며, 관계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부정적 유대는 일종의 속도감 있는 친밀감 촉진제지만, 관계를 오래 지속하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긍정적 경험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부정적 유대는 늘 제3자를 필요로 한다. 함께 미워할 대상, 함께 비난할 사람, 혹은 함께 불편해할 집단이다. 이 대상은 관계 바깥에 놓이며, 동시에 관계를 단단히 묶는 접착제가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상은 쉽게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악플 문화는 그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특정 인물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오가는 댓글 공간에서는,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빠른 결속이 형성된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같은 대상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결된다. 이때 관계의 친밀함은 타인의 소모 위에 세워진다.
이런 유대는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인간 관계의 구조적 선택에 가깝다. 관계를 빠르게 만들고 싶을수록, 우리는 긍정적 공유보다 부정적 공유를 택한다. 좋아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는 시간과 맥락이 필요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공유하는 데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반복될수록 관계의 기반이 왜곡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함께 깎아내리는 경험은 친밀감을 주지만, 동시에 관계의 윤리적 기준을 낮춘다. 오늘은 타인을 비난하며 가까워졌지만, 내일은 그 화살이 나를 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부정적 유대는 빠르고 강력하다. 그러나 그 친밀감이 무엇을 대가로 만들어졌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관계는 언제든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친밀함은 정말 서로를 이해한 결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함께 소비한 결과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 유대는 분명 관계를 빠르게 만든다. 그러나 그 친밀감이 무엇을 공유한 결과인지는 쉽게 잊힌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이해해서 가까워졌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누군가를 함께 불편해하며 연결되었을 수도 있다.
관계를 시작하게 만든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참고자료-
Bosson, J. K., Johnson, A. B., Niederhoffer, K., & Swann, W. B., Jr. (2006). Interpersonal chemistry through negativity bonding: Sharing negative attitudes about other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2(3), 426–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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