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진실을 가리는 마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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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진실을 가리는 마음의 그림자 - 현대 사회에서 법심리학의 역할
  • 기사등록 2025-12-24 08:45:04
  • 기사수정 2025-12-29 14: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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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윤서 ]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범죄와 사건 뒤에는 늘 ‘사람의 마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법정에 서게 되면 개인의 감정은 지워지고 오직 사실과 법리만이 남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을 배제한 채 진실을 완벽히 규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등장한 분야가 바로 법심리학이다.


피의자와 피해자, 목격자, 배심원, 수사관까지 법을 둘러싼 모든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 분야는 단순한 보조학문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정의 실현의 핵심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기억은 쉽게 흔들린다


법정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증거 중 하나는 ‘목격자 진술’이다. 하지만 연구들은 인간의 기억이 언제든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사건 당시의 공포, 주변인의 반응, 수사관의 질문 방식, 언론 보도까지 모든 요소가 기억을 다시 쓰게 만든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청년층은 영상과 사진, SNS 정보 속에서 사건을 접하며 실제 기억과 혼재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억 오염’이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강한 주장이나 잘못된 정보에 노출될수록 원래 기억은 희미해지고, 새롭게 구성된 기억이 자리 잡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확신하니까 맞다”고 믿는다. 하지만 법심리학은 “확신의 크기와 기억의 정확성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가려내는 과학


수사 현장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보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행동 몇 가지로 거짓말을 판별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인지적 부담을 이용한 심문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피의자에게 사건을 역순으로 설명하게 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거짓말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두뇌 자원이 필요해 반응 속도나 설명의 일관성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심리학은 여기서 더 나아가 “거짓말은 반드시 악의만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죄책감, 혼란, 공포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의도치 않은 왜곡이 생기기도 한다. 결국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보이지 않는 편향, 법정에 영향을 미치다


판사와 배심원 역시 ‘심리적 존재’다.
어떤 피고인이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나타났을 때와 후줄근한 차림으로 서 있을 때,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를 외모 편향이라고 한다.


또한 감정적인 사진이나 영상이 제시되면 처벌 감정이 강화되고, 전문가의 권위적 발언에 쉽게 설득되는 권위 편향도 발생한다.


이런 편향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법심리학에서는 재판 참여자들에게 편향을 인식시키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마음의 눈을 먼저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법정, 새로운 심리 분석의 장


기술 발전은 법심리학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목격자가 당시 상황을 안정된 환경에서 재경험하게 하거나, AI 모델이 대규모 판결 데이터를 분석해 편향 패턴을 추적하는 연구도 등장했다. 또한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늘면서 디지털 행동 데이터가 심리 분석의 중요한 재료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이버 스토킹이나 온라인 혐오 표현은 가해자의 공감 능력과 공격성, 충동 조절 문제를 파악하는 근거가 된다. 디지털 행위가 곧 심리적 특성을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피해자 심리, 그리고 회복의 과정


법심리학은 피해자의 마음까지 다룬다. 범죄 피해자는 사건 이후 극심한 불안과 수치심, 분노를 겪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건의 전모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법정 진술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피해자 중심 접근(victim-centered approach)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둔다.


피해자의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진술 자체가 왜곡되거나, 결국 정의 실현의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법심리학은 그들의 목소리를 안전하게 담아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변화


법심리학은 단순히 법을 돕는 학문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판단되고, 왜곡되고, 상처받고, 변화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정의와 신뢰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냉정한 법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이다. 피의자든, 피해자든, 증인이든… 결국 법정에 서는 것은 모두 인간이다.


심리적 요인을 이해하고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법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며,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법과 심리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더 인간적인 정의에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다.



*참고문헌

  • 1. Helm, R. K., & Chen, Y. (2025). Social Metamemory Judgments in the Legal Context: Examining Judgments About the Memory of Others. Behavioral Sciences, 15(7), 878.

  • 2. Russell, E. M., Longstaff, M. G., & Winskel, H. (2024). Sex Differences in Eyewitness Memory: A Scoping Review.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31(3), 985–999.

  • 3. Torrance, M. K. G. et al. (2025). Examining the Impact of Warnings on Eyewitness Memory. Scientific Reports (Open Access, 2025).

  • 4. Nair, A., Afroz, Z., & Akhtar, Md. S. (2025). Incongruence Identification in Eyewitness Testimony. 

  • 5. Chan, S., Pataranutaporn, P., Suri, A., Zulfikar, W., Maes, P., & Loftus, E. F. (2024). Conversational AI Powered by Large Language Models Amplifies False Memories in Witness Interviews. Journal Articles from Korean Journal of Psychology: Law (한국법심리학회지:법,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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