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회, 사라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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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 ]



카톡!

누군가에겐 반갑지만, 누군가에겐 숨이 막히는 소리다.

“요즘 어떻게 지내?”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의 안부 인사 앞에서 고립·은둔 청년은 답장을 망설인다.

‘이번엔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하지...’

“오랜만이야. 난 잘 지내고 있어. 요즘 좀 바빠서.. 다음에 보자.”



청년의 고립


청년들이 점점 사회와 등을 돌린 채 살아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가운데 약 5%에 해당하는 50만 명가량이 극도의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사람을 덜 만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활동 전반이 단절된 상태다.


왜 이토록 많은 청년들이 세상과 거리를 두게 되었을까.


고립의 원인


첫 번째는 개인적 요인이다. 아동·청소년기에 겪은 학대, 가정불화, 학교폭력과 같은 부정적 경험은 자존감과 사람과의 신뢰를 손상시킨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고, 고립의 위험을 높인다. 심리학자 아미 로카흐는 외로움은 사회적 경험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생겨난다고 했다. 성인기에 접어들어 취업, 인간관계, 결혼 등 사회적 기준에 부응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과 수치심 역시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 요인이다. 성과와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사람 간의 관계를 약화시킨다.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느끼는 순간, 개인은 자책과 무력감에 빠져 스스로 사회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또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상황 역시 문제다. 사회적 압박은 여전히 강하지만, 이를 완충해주던 공동체적 연결은 약해졌다. 그 결과 청년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설 자리를 잃는다. 여기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현실 관계를 대신하는 감정적 도피처로 작동하며 고립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마지막 원인은 고립 그 자체다. 고립이 길어질수록 관계는 단절되고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은 커진다. 고립된 개인은 자신을 수치스럽게 인식하고, 타인과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이는 다시 사회적 회피로 이어진다. 이렇게 고립은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고립의 단계


류주연·성기옥·김수진의 논문 「청년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고립되는가?」에서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고립 상태로 이어지는 단계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며 최소 6개월 이상 외부와 단절된 경험이 있는 19~34세 청년 1인 가구 11명을 대상으로 질적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번째 단계는 ‘희미해지는 관계와 고립의 시작’이다. 대학 진학, 취업 준비, 갈등 등으로 기존의 관계망이 무너지면서 청년들은 점차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계를 쌓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고, 경제적 불안정은 삶의 기반 자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사회적 기대에 위축되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위축되고 청년들은 관계를 스스로 끊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고립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점차 피할 수 없는 상태로 굳어진다.


세 번째는 ‘고립에 처한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고립을 자각하지 못하지만, 우울과 외로움이 깊어지며 스스로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관계망은 해체된 뒤였고, 고립은 더 이상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네 번째는 ‘힘들고 두려운 고립의 시간’이다. 고립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불규칙한 생활, 영양 불균형, 우울증과 자살 충동,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까지 청년들의 경험은 매우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은 이들을 더욱 위험한 상태로 내몬다.


마지막 단계인 ‘벗어나기 어려운 고립의 굴레’에서는 용기를 내어 취업이나 사회활동을 시작했지만 고립감은 여전하다. 직장을 다니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낮은 사회적 지지망과 부족한 교류 등의 이유로 고립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사라진 사회


청년에게 고립은 단순한 물리적 단절이 아니라, 정체성과 자존감, 소속감이 동시에 붕괴된 다차원적 경험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청년 고립을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입, 취업, 결혼, 자산 형성을 정해진 속도로 통과하지 못하면 실패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실업, 건강문제 등으로 잠시 멈추어 버틸 수 있는 안정망이 부족하고, 돌아가면 회복 경로가 거의 없다. 이탈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관계망에서도 밀려난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을 잠시 멈춰 세우고 다시 합류시킬 구조가 없는 사회 속에서 청년들은 점점 더 외로운 길을 선택한다.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 서운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 단절은 당신을 향한 거절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반복된 실패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친구는 그 누구보다 연결을 갈망하지만, 다시 연결될 용기를 잃어버린 상태다.




[참고자료]

• 류주연, 성기옥, 김수진. (2023). 청년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고립되는가? 사회과학연구, 34(3), 47-71.

• 밴디뉴스. (2023). 청년들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고립되는가. 밴디뉴스. https://www.band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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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14 08: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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