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비행경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청소년의 정서 경로
청소년기의 학교적응은 단순한 학교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성인기 사회적 기능과 심리적 적응을 예측하는 핵심 발달과업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며, 또래관계, 교사와의 관계, 학업 수행을 통해 사회적 규범과 자기개념을 형성해 나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적응은 학업 성취를 넘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관계 형성의 종합적 지표로 기능한다.
그러나 오늘날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학교는 경쟁적 입시 구조와 과중한 학업 부담, 관계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 우울은 점차 보편적인 정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그 영향은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학교적응 전반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존 연구들은 청소년의 우울이 학교적응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고해 왔다. 우울 수준이 높은 청소년일수록 학업 참여도가 낮고, 또래 및 교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며,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청소년기의 우울은 성인기의 우울과 달리 침묵과 무기력보다는 공격성, 반항, 회피와 같은 외현화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청소년의 우울이 학교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공격성과 사회적 위축이 어떠한 구조적 역할을 수행하는지, 그리고 이 경로가 비행경험 유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종단 자료를 통해 분석하였다. 분석에는 한국아동 · 청소년패널조사 중 중학교 1학년 패널 2,091명의 자료가 활용되었으며, 구조방정식 모형을 적용한 다중집단 분석이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는 비행경험이 없는 청소년과 비행경험이 있는 청소년 집단 간에 우울이 학교적응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먼저 비행경험이 없는 청소년의 경우, 우울은 학교적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학교 2학년 시기의 우울은 중학교 3학년의 공격성을 증가시키고, 이 공격성은 다시 고등학교 1학년 시기의 학교적응을 저해하는 경로를 형성하였다. 반면 사회적 위축은 우울로 인해 증가하였으나, 학교적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행경험이 없는 청소년에게 있어 우울이 비교적 직접적이고 선형적인 방식으로 학교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들의 경우 우울이 누적되면서 정서 조절이 어려워지고, 그 결과 공격적 반응이 증가하며, 이러한 행동 양식이 학교 환경에서의 적응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반면 비행경험이 있는 청소년 집단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이 집단에서는 우울이 학교적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대신 우울 → 공격성 → 사회적 위축 → 학교적응 저하라는 연쇄적이고 간접적인 경로가 확인되었다. 즉, 우울이 공격성을 높이고, 높아진 공격성은 다시 사회적 위축을 강화하며, 이러한 위축 경험이 누적되면서 결국 학교적응이 저하되는 구조였다.
이는 비행경험이 있는 청소년에게 있어 우울이 이미 복합적인 심리·사회적 문제 맥락 속에 놓여 있으며, 단일 변인으로는 학교적응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격성과 사회적 위축은 이 집단에서 핵심적인 매개 기제로 기능하며, 특히 공격성이 사회적 위축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낙인 경험, 관계 단절, 자기개념 손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청소년 문제를 다룰 때 ‘우울’이라는 정서 상태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비행경험 유무에 따라 개입의 초점이 달라져야 하며, 비행경험이 있는 청소년에게는 우울 자체보다 공격성과 사회적 위축이라는 매개 과정에 대한 정교한 개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학교 현장과 상담 장면에서 이들을 단순히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으로 분류하는 접근은 오히려 적응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마주한 우울의 얼굴들
이 연구를 읽으며 필자는 그동안 상담 현장에서 만났던 여러 청소년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특히 ADHD를 진단받은 초등학교 남아와의 상담 실습 경험은 본 연구의 결과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해당 아동은 표면적으로는 산만함과 충동성, 간헐적인 공격적 행동이 두드러졌으나, 회기를 거듭할수록 그 이면에는 반복된 실패 경험과 관계 좌절에서 비롯된 깊은 위축과 우울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 회기에서 아동은 놀이 상황에서 쉽게 흥분하거나 규칙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종종 ‘문제행동’으로 인식되기 쉬운 양상이었다. 그러나 정서적 반영과 관계 형성을 통해 아동의 경험을 따라가다 보니, 공격적 반응 뒤에는 “어차피 나는 안 될 거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와 같은 부정적 자기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연구에서 말하는 우울이 공격성을 거쳐 사회적 위축으로 이어지는 경로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또한 학교 적응의 어려움은 단순히 학습 문제나 규칙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패한 경험이 누적된 결과’임을 체감하게 되었다. 특히 한 회기에서 아동이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자꾸 혼나니까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해요”라고 말했을 때, 사회적 위축이 얼마나 강력한 방어 전략이 될 수 있는지를 실감하였다. 이는 비행경험이 있든 없든, 청소년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관계적 상처가 적응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청소년의 문제를 ‘행동’이나 ‘진단명’ 중심으로 해석하는 접근의 한계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공격성과 위축은 개입의 대상이기 이전에, 청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정서적 전략일 수 있다. 따라서 학교와 상담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문제를 제거하는 개입이 아니라, 그 문제 뒤에 놓인 정서의 흐름을 이해하고 회복 가능한 관계를 제공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심리학 기자로서, 그리고 상담 현장을 경험한 예비 전문가로서, 본 연구는 학문적 성과를 넘어 현장 실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청소년의 우울을 얼마나 세밀하게 읽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우울이 어떤 경로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드러나는지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가. 청소년의 학교적응을 논할 때, 이제는 성적이나 규칙 준수 이전에 정서의 구조와 관계의 경로를 함께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라 판단된다.
'문제를 고치기보다, 맥락을 이해하는 상담을 향하여'
이 연구와 현장 경험을 종합하며, 필자는 앞으로 청소년 상담을 수행할 때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문제를 빠르게 규정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년의 공격성, 위축, 비행 행동은 개입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으나, 결코 상담의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동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발생하며, 그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이루어지는 상담은 오히려 청소년을 또 다른 평가의 장으로 밀어 넣을 위험이 있다.
미래의 청소년 상담자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보다 ‘이 행동이 이 청소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먼저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우울이 공격성과 위축을 매개로 학교적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본 연구의 결과는, 상담자가 정서와 행동을 분리해 보지 말아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공격적인 언행 뒤에는 좌절된 기대와 반복된 실패 경험이 있을 수 있으며, 사회적 위축은 관계로부터 물러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또한 상담자는 청소년을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애써온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공감의 문제가 아니라, 상담 관계의 권력 구조를 재정립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청소년은 이미 학교, 가정, 또래 집단 안에서 수많은 평가와 비교를 경험하고 있다. 상담 공간마저 평가의 연장이 된다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상담자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가 이전에, 안전하게 실패하고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를 제공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미래의 청소년 상담자는 단일한 개입 모델에 의존하기보다, 개인의 발달사와 환경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 비행경험 유무에 따라 우울이 학교적응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는, 획일적인 개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상담자가 ‘이 기법이 효과적인가’보다 ‘이 청소년에게 지금 필요한 개입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상담자는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점검할 수 있는 자기성찰적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공격적이거나 위축된 청소년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불편감, 무력감, 조급함은 상담자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인식하고, 그것이 상담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청소년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상담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앞으로 청소년 상담을 수행하며, 문제를 줄이는 상담자가 아니라 의미를 확장하는 상담자가 되고자 한다. 우울과 공격성, 위축이라는 단어 너머에 있는 한 개인의 삶의 맥락을 존중하며, 학교와 사회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미래의 청소년 상담자로서 필자가 지향하는 자세이자 마음가짐이다.
참고문헌
1) 이순희, & 허만세. (2018). 청소년의 우울과 학교적응의 관계에서 공격성과 사회적 위축의 구조적 관계: 비행경험 유무의 차이를 중심으로. 보건사회연구, 38(4), 251–289.
2) 김귀연, 이태경. (2025-11-07). 청소년 우울증세, 공격성, 부정적 양육태도간 종단적 관계: 성차를 중심으로. 한국아동학회 학술발표논문집, 대전.
3) 박보경, 유설희. (2025-11-07). 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의 퍼빙이 청소년의 퍼빙에 미치는 영향: 청소년의 외로움과 우울의 매개효과. 한국아동학회 학술발표논문집, 대전.
4) 조영주, 장문영, 신나나. (2025-11-07). 학령 후기에서 청소년기까지 사회적 시차와 우울의 종단적 관계. 한국아동학회 학술발표논문집,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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