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홍콩을 정말 X나 좋아한다.’ : 사랑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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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홍콩을 정말 X나 좋아한다.’ : 사랑의 귀환 - 에리히 프롬의 사랑으로 읽는 국가안전법에 대항하는 홍콩 시위대
  • 기사등록 2026-01-15 08: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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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제희 ]

 

2019년 6월에 시작된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시점,

 

등장한 구호가 있다.

 

출처: 立場新聞(현재 폐간). 


“우리는 홍콩을 정말 X나 좋아한다.”

 

광둥어 욕설인 “撚〔lan〕(X나)”가 포함된 이 문장은 분노를 넘어선 마음 시린 감정을 드러낸다. 시위에 참여했거나 그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홍콩은 좋은 게 없다. 언제나 정치는 황당하고, 집값도 비싸고 날씨는 덥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를 사랑하고 여전히 여기 있다.〔...〕

숨이 붙어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이곳을 살리고 싶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초기의 반대 시위가 ‘홍콩인 힘내자.’라는 구호로 분노를 조직했다면, 강경 진압과 민간인의 희생이 반복되는 과정 속, 시위의 언어는 과격한 정치적 슬로건 대신 ‘사랑’이라는 가장 홍콩다운 표현으로 이동했다. 이는 감정의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정체성의 재정의에 가까웠다. 중국의 홍콩을 향한 국가안전법 도입 이후 흔들리는 홍콩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사랑이라는 언어를 통해 다시 말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의 이론을 체계화한 독일인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빠지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랑은 통제 불가능한 감정 사건이 아니라, 선택하고 연습하는 참여의 활동이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겪는 감정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능동적 태도이자 능력이다.

 

프롬은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불안을 ‘분리’에서 찾는다. 타인과, 공동체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감각은 인간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대인간적 융합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라고 말한다. 이 욕망은 취향이나 감정의 문제보다는 생존의 조건에 가깝다. 인류를, 집단을, 가족을, 사회를 하나로 묶어온 힘이며 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인간은 쉽게 붕괴한다. 

 

이 맥락에서 홍콩 시위에서 등장한 ‘사랑’이라는 언어는 감정의 과잉이나, 감상주의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아마 외부의 압력 속에서 붕괴에 직면한 관계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호출한 언어였다. 이 구호는 승리를 선언하는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아직 우리는 여기에 있고, 여전히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서로에게 확인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사랑은 이 순간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흩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맞대는 뭉침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언제나 선(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로 셜심하는 순간, 그 대상은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지위를 자연스럽게 획득한다. 사랑은 곧 선택이자, 선택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만든다. 이것이 사랑이 지닌 배타성이다.

 

안과 밖을 구별하는 순간, 나에게 선한 것이 타인에게는 악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은 관계를 결속시키는 힘인 동시에 그 관계의 경계를 언제, 어떤 기준으로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동반한다. 더 나아가 그렇게 규정된 “밖”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하는 과제도 피할 수 없다. 프롬에게 사랑은 인간을 결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지만, 동시에 배제의 논리를 품을 수 있는 위험한 힘이기도 하다. 

 

시위대는 ‘우리는 홍콩인이다.’라는 폐쇄적 선언보다, ‘우리는 이 도시를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서로를 연결했다. 이는 누가 더 ‘진짜 홍콩인’인지를 가르는 배타적 기준이 아니라, 함께 남아 있고자 하는 의지를 기준으로 한 결속이었다.

 

거리에서 낯선 이들이 서로 물을 건네고 방독면을 나누며, 체포된 이의 이름을 함께 불러 기억하는 장면들은 홍콩 시위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었다. 2019년 여름 이후 형성된 자발적 구급대와 볍률 지원 네트워크는 특정 조직이나 지도부 없이 움직였다.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은 ‘Be Water’라는 구호 아래, 필요할 때 모이고 위험해지면 흩어지며 서로의 안전을 우선했다. 시위 현장에 응급 처치를 제공한 시민 구급대, 체포자 명단을 정리해 가족과 변호사에게 전달한 온라인 지원들이 있었다.

 

2019년 8월과 11월, 공항과 대학 캠퍼스가 봉쇄되고 강경 진압이 이어졌을 때에도 이 실천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폴리테크닉대학(PolyU) 포위 사태 당시, 외부에서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려 했던 시도와, 내부에 남은 이들의 이름과 상태를 기록해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함께 있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다. 이들은 성공을 약속 받지 않았고, 패배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선택을 반복한다는 점은, 함께 살아온 삶의 방식과 서로를 향한 책임감이다.

 

오랫동안 홍콩에는 ‘홍콩인은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에 냉담하다.’는 담론이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시위대에 드러난 시민들의 행동은 그 통념을 무너뜨렸다. 그들이 거부했던 것은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라는 이름으로 전문화된 소수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중국과 홍콩, 그리고 국제사회가 이 사안을 바라보는 기류와 기조는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해석과 전략에도 민간인의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강조했듯, 사랑의 윤리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홍콩에서 호출된 사랑은 승리를 약속하지 않았지만, 정치가 끝내 놓쳐서는 안 될 기준이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출처

1) 김선영. (2022).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사랑의 기술』: 사랑은 배워야 할 기술이다. 통섭인문학, 1(1), 87–94.

2) 송재용. (2010). 에리히 프롬의 ‘자기사랑(self-love)’에 관한 윤리적 고찰 [석사학위논문,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3) 장정아. (2025). 사랑이 홍콩을 구할 수 있을까?: 배타적 정체성과 본질주의를 넘어서. 중국사회과학논총, 7(1), 6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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