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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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집 안에 사람이 늘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들어오던 집과는 달리,

이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였다.

박정호는 그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김미경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왔네.”


아들이 들어왔다.

회사에서 바로 온 듯

정장 바지에 셔츠 차림이었다.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아버지.”


아들은 짧게 인사했다.

예전과 같았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오늘은 집에 계셨어요?”


그 질문에

박정호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응. 뭐… 좀 돌아다니다가.”

“아, 그러시구나.”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박정호를 불편하게 했다.


식탁에 셋이 앉았다.

김미경이 국을 내왔다.

평소보다 반찬이 많았다.


“이제 아버지도 시간 여유 있으시니까

병원 검진도 좀 받으시고…”


아들이 말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이미 준비된 말처럼.


“운동도 하셔야 하고요.

요즘 동네 문화센터 같은 데도 많더라고요.”


박정호는 숟가락을 들고 있다가

잠시 멈췄다.


“알아서 할게.”


그의 말은 짧았다.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들은 다시 말을 잇지 않았다.

김미경이 그 사이를 메웠다.


“아버지 말도 맞아.

천천히 생각해 봐도 돼.”


하지만 그 말도

위로보다는 조율처럼 들렸다.


박정호는 문득 느꼈다.

자신이

이 집에서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결정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밥을 먹는 동안

대화는 이어졌지만

그는 점점 말이 줄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이제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 말이

걱정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선이 그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렸다.


식사가 끝나고

아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김미경은 설거지를 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박정호는

리모컨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무슨 프로그램이 나오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김미경이 조용히 옆에 앉았다.


“기분 상했어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그는 바로 대답했다.

그 대답이

거짓이라는 걸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들 걱정해서 그래요.”

“알아.”


알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부분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날 밤,

박정호는 잠들기 전

아들의 방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 너머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자신의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자식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일까.

존경이었을까,

부담이었을까,

아니면

이제는 보호해야 할 대상일까.


답은 없었다.

침대에 누운 박정호는

눈을 감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늘 따뜻했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시선도 함께 있었다.

그 시선 앞에서

그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동시에

가장 빠르게 변화를 감지하는 존재입니다.

은퇴는 개인의 사건이지만,

가족 안에서는 모두의 문제가 됩니다.

4화에서는 ‘보호받는 위치’에 놓인 불편함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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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06 10: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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