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박정호는 서재 문을 닫았다.
굳이 닫을 필요는 없었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혼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책장 앞에 섰다.
책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필요했던 것들이었다.
경영, 관리, 리더십.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는 한 권을 꺼내 들었다가
다시 꽂았다.
지금은
아무 문장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서랍을 열자
오래된 노트 하나가 나왔다.
표지가 닳아 있었고,
모서리는 접혀 있었다.
젊었을 때 쓰던 노트였다.
회사에 막 들어갔을 무렵,
무언가를 기록하겠다는 다짐으로 샀던 것.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잘 살자.’
짧은 문장이었다.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늦지 않게 취직했고,
꾸준히 일했고,
가족을 책임졌다.
그게
‘잘 사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지금,
그 문장은 질문처럼 느껴졌다.
정말 잘 살았을까.
노트를 넘기자
계획들이 적혀 있었다.
언젠가 하고 싶었던 일들,
가보고 싶었던 곳들.
대부분
이루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는 노트를 덮었다.
생각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거실에서는
김미경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아니야, 아직 특별한 건 없어.
당분간은 그냥 쉬라고 하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귀에 들어왔다.
전화를 끊은 김미경이
그를 보았다.
“동네 언니가 물어봐서.”
“뭐라고 했어?”
“잘 지내신다고.”
그 말에
박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낸다.
그 말은
언제나 편리했다.
설명할 필요가 없고,
더 묻지 않아도 되는 말.
“당신은… 잘 지내?”
김미경이 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박정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모르겠어.”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김미경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그녀의 말이
조용히 방 안에 내려앉았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박정호는 혼자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걸었다.
문득
회사 앞을 지나게 되었다.
건물은 그대로였다.
불이 켜진 창들이 많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곳은
이제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생각했다.
잘 살아온 줄 알았는데,
그 말은
과거형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집 문을 열자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이
조금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말 :
우리는 종종
‘잘 살아왔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하지만 멈춰 서는 순간,
그 말은 질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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