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훈
[한국심리학신문=김자훈 ]
필자 촬영, 고기동(2026) ―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통과하는 하나의 공간
최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일자리 감소와 자동화에 대한 우려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심리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많은 논의가 기술이 대체할 직무의 목록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지만, 실제로 개인이 경험하는 불안의 핵심은 생계 위협 그 자체보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미의 붕괴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노동과 역할을 통해 사회적 위치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해 왔다. 직업은 단순한 소득 수단을 넘어,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과 삶의 방향성을 제공하는 핵심 구조였다. 그러나 AI는 특정 직무를 넘어, 인간이 해야만 한다고 여겨졌던 일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능력을 잃었다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언어를 상실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통제감 상실과 의미 공백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해질 때 강한 불안을 경험한다. AI 시대의 불안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한 공포보다, “무엇을 해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구조적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불안은 심리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의미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의식주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적 감각이 무너질 때 심리는 가장 먼저 균열을 드러낸다. AI로 인한 혼란은 정체성의 위기이자 동시에 노동의 가치와 생존 구조가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반응이다. 의미의 붕괴는 곧 생존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 공백은 대체 서사를 요구한다. 그 결과 일부 개인과 집단은 예언, 음모론, 혹은 극단적 정치 담론에 끌리게 된다. 이들 서사는 미래를 정확히 맞히기 때문에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야기로 정리해주기 때문에 작동한다. 이는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 과부하의 문제에 가깝다. 너무 많은 가능성 앞에서 인간은 다시 닫힌 결말을 원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한 아버지로서의 고민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 태하와 딸 루하에게 어떻게 훈육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더 많은 지식이나 빠른 기술 습득보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질문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예측 가능한 미래를 준비시키기보다, 예측이 빗나가도 무너지지 않는 감각을 길러주는 것이 오히려 AI 시대의 교육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AI로 인한 의미 붕괴 앞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답이 아니라, 의미가 불분명한 상태를 견디는 내적 구조다. 예언을 믿는 심리는 나약함의 증거라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버티려는 인간의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불안을 외부의 서사에 위임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해석하며 통과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AI 이후의 시대는 어쩌면 인간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맞히는 존재로 살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한 세계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지 모른다. 불안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흔들린다는 사실이 곧 잘못 살아왔다는 증거도 아니다. 지금 느끼는 혼란은 무능의 표시가 아니라,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신호다. 부디 서두르지 말고, 자신을 과도하게 몰아붙이지도 않기를 바란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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