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박정호는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했다.
회사 근처 숙소도,
출장지의 호텔도 아니었다.
익숙한 천장.
자기 집이었다.
그 사실이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고들 말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늘 설명 없이 던져졌다.
시작이라면
뭐부터 해야 할까.
박정호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김미경은 맞은편에서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동네 체육관에서
노년층 프로그램이 있대.”
그녀가 말했다.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그래?”
“응. 요가도 있고,
가벼운 운동도 있고.”
박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 없는 척했지만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노년층.
그 단어가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된 것 같았다.
“당장 안 해도 돼.”
김미경이 덧붙였다.
그 말은 배려였지만
동시에 유예였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무언가를 미루는 것도
선택이 된다는 걸 알았다.
오후가 되어
그는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이력서를 열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수정한 날짜가
몇 년 전이었다.
경력은 빼곡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끝난 시간들이 들어 있었다.
‘지원 동기’란을 보며
그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지금의 자신에게
지원할 곳이 있을까.
이력서를 닫았다.
그건 아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오랜 친구, 이도현이었다.
“야, 퇴직 축하한다.”
밝은 목소리였다.
너무 밝아서
박정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고맙다.”
“이제 진짜 인생 시작이지.
시간도 많고.”
그 말에
박정호는 웃었다.
웃었지만
마음은 따라가지 못했다.
“나중에 한 번 보자.”
“그래.”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많았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퇴직은
분명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시작이라는 말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박정호는 현관 앞에 서서
신발을 바라보았다.
나갈 수도 있었고,
집에 남을 수도 있었다.
선택지는 많았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는 결국
문을 열고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작가의 말 :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은
의외로 잔인합니다.
시작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막막함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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