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은
[한국심리학신문=김하은 ]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다섯 살 브라질 소년 제제는 늘 말썽꾸러기로 불린다. 가난과 실업은 이 가족의 일상이었고, 집안에는 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버지는 직장을 잃은 뒤 반년째 집에 머물며 무력감에 빠져 있었고, 어머니와 누나는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가족 모두가 생존에 매달린 상황에서, 어린 제제의 감정과 욕구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집 안에서 제제는 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사소한 말실수나 장난에도 어김없이 매질이 뒤따랐고, 아이에게 허락된 관심은 꾸중과 체벌뿐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표현할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제제는 ‘혼나는 아이’라는 역할을 먼저 학습해버렸다.
가난으로 인해 이사한 새 집 뒤뜰에는 가시가 많은 작은 라임오렌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볼품없고 외딴 그 나무는 마치 제제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제제는 그 나무에 ‘밍기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며 유일한 친구로 삼는다. 상상력이 풍부한 제제에게 밍기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존재였다.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은 감정의 교류를 그는 나무와의 대화를 통해 대신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제제는 집 안에서는 억눌린 아이였지만, 집 밖에서는 유난히 말썽을 부리는 아이로 알려졌다. 자동차 뒤에 매달려 바람을 맞는 위험한 놀이에 빠졌고, 그 과정에서 차 주인인 포르투갈인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이 행동은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방식이었다. 위험과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나는 여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뒤, 이웃집 구아바를 훔치다 유리조각을 밟아 다친 제제를 치료해준 사람 역시 그 포르투갈인이었다. 제제는 자신을 “쓸모없는 아이”라고 낮추며 장난을 고백했지만, 그는 제제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준다. 그 말은 훈계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선언이었다. 제제의 삶에 처음으로 등장한 무조건적인 신뢰였다.
제제는 그를 ‘뽀르뚜가’라 부르며 깊이 의지하게 되었고, 이후 거친 장난과 욕설, 이웃을 괴롭히는 행동을 점차 멈추기 시작한다. 눈에 띄는 변화는 규칙이나 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자신을 믿고 바라봐준다는 경험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소설 속 제제의 행동은 단순한 말썽이 아니다. 매를 맞을 것을 알면서도 장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행동이 제제에게 처벌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평소 무관심한 가족과 이웃이 제제에게 반응하는 순간은 오직 그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뿐이다. 아이에게 장난은 벌을 감수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관심의 증거’였으며, 침묵 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개념’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특히 어린 시절, 중요한 타인에게서 받는 관심과 지지는 자아 형성의 핵심 요소다. 제제는 부모와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경험하지 못한 채, 어떤 방식으로든 버림받지 않기 위해 관심을 갈구했다. 그의 장난은 애정을 향한 왜곡된 요청이었고, 반복되는 체벌과 비난은 결국 제제가 스스로를 ‘악마 같은 아이’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낮아진 자존감과 부정적 자기 인식은 그렇게 굳어져 갔다.
이 흐름을 바꾼 인물이 바로 뽀르뚜가다. 그는 제제를 훈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로저스가 말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과 ‘진실성’이 그대로 구현된 관계였다. 그 앞에서 제제는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스스로를 부정하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악마 같은 아이”가 아니라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존재”로 자신을 다시 정의하게 된 것이다. 뽀르뚜가의 죽음은 제제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실을 안기지만, 그 관계가 남긴 흔적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라임오렌지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듯, 제제의 마음속에는 이미 변화의 씨앗이 자라나 있었다. 상실은 아프지만, 사랑받았던 기억은 아이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는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훈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를 묻는다. 아이의 행동을 고치기 전에, 그 행동이 왜 필요했는지를 묻지 않는 사회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만들어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처벌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제제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아이들의 행동만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행동 뒤에 숨은 외로움과 결핍,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고 있는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그 질문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독자에게 되돌려준다.
참고문헌
친애하는 나의 마음에게 (강영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칼로저스의 심리학 인간중심치료 톺아보기 (윤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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