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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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점심 반찬을 미리 준비했다.

예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달라진 건

집 안에 항상

박정호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보는 척만 했을 뿐,

내용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은 뭐 먹을 거예요?”


김미경이 물었다.

습관처럼.


“아무거나.”


박정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 말이

그녀를 잠시 멈추게 했다.


아무거나.

그 말은

편리했지만

가끔은 무책임하게 들렸다.


“그럼 국이나 끓일게요.”

“그래.”


짧은 대화였다.

부부 사이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방식이었다.

김미경은 냄비를 올려두며

문득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 사람과 이렇게 말을 줄였을까.

예전에는

서로의 하루를 묻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텔레비전 소리만 컸다.

박정호는 리모컨을 쥔 채

채널을 돌렸다.


“그만 좀 돌려.”


김미경이 말했다.

생각보다 날이 서 있었다.


“아, 미안.”


그는 바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 태도가

그녀를 더 불편하게 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갈등을 피하는 말이었지,

이해하려는 말은 아니었다.


설거지를 하며

김미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집에 있는데도

집에 없는 것 같다고.


박정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늘 옆에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오후가 되자

둘은 각자 다른 방에 머물렀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마음은 닫혀 있었다.


“당신, 저녁에 친구 만난다더니

언제 나가요?”


김미경이 물었다.


“아, 그거…

오늘은 그냥 안 나가려고.”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에

실망이 묻어났다.


“왜?”

“아니… 그냥.”


그냥이라는 말이

둘 사이에

또 하나의 벽을 만들었다.

박정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아내의 하루에도

변수가 되어버렸다는 걸.


예전에는

없는 존재였고,

지금은

너무 많은 존재였다.

저녁이 되어

김미경은 식탁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었다.


“당신은…

이제 뭐가 하고 싶어요?”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박정호는

숟가락을 멈췄다.


“왜?”

“계속 이렇게 지낼 건지

알고 싶어서.”


그 질문은

비난이 아니었다.

불안이었다.


“아직 모르겠어.”


그의 대답은

정직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김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이제는 좀 알고 싶어.”


그 말 뒤에는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웠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부부는

다시 타인이 되는 중이었다.

아주 조용하게.




작가의 말 :

은퇴는

부부 관계를 다시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감춰졌던 거리도 선명해집니다.

7화는 ‘같이 있지만 멀어진 관계’를 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친구 관계의 균열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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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12 10: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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