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8화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박정호는 아들의 방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빠른 소리.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예전에는

그 소리가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문을 두드릴까 하다

그만두었다.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할 일이 없을수록

손은 더 바빴다.

잠시 후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

저녁에 약속 있어서

좀 늦어요.”


이미 정해진 일정이었다.

보고가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그래.”


박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들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요즘 괜찮으세요?”


그 질문은

형식적이었지만

완전히 가볍지는 않았다.


“응. 괜찮아.”


박정호는 자동으로 대답했다.

그 말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

아들은 모를 것이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 말에

박정호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이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없어.”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히 더 말하면

약해 보일 것 같았다.

현관문이 닫히고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김미경이 말했다.


“아이는…

이제 자기 인생 사는 거죠.”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알아.”


박정호는 대답했다.

알지만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자식은

언제나 보호해야 할 존재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자기 인생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서운했다.

그리고

조금은 안도됐다.

박정호는

아들이 놓고 간 컵을 들었다.

아직 따뜻했다.

그 온기가

금세 식을 것 같았다.


저녁이 늦어지자

그는 혼자 밥을 먹었다.

김미경은 먼저 들어가 쉬고 있었다.

식탁 맞은편에

아들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가

괜히 크게 느껴졌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아들이 집을 떠날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그날이 오면

자신은

어떤 표정으로

문 앞에 서게 될까.


그는

아들의 방 문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의 방은

이미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자식은

이미 어른이었고,

그 사실을

이제는

부모가 받아들여야 할 차례였다.




작가의 말 :

부모의 시간은

자식을 중심으로 흘러왔지만,

자식의 시간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8화는 ‘부모로 남고 싶은 마음’과

‘물러나야 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친구 관계의 균열이 시작됩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863
  • 기사등록 2026-01-13 09:13:4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