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박정호는 아들의 방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빠른 소리.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예전에는
그 소리가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문을 두드릴까 하다
그만두었다.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할 일이 없을수록
손은 더 바빴다.
잠시 후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
저녁에 약속 있어서
좀 늦어요.”
이미 정해진 일정이었다.
보고가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그래.”
박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들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요즘 괜찮으세요?”
그 질문은
형식적이었지만
완전히 가볍지는 않았다.
“응. 괜찮아.”
박정호는 자동으로 대답했다.
그 말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
아들은 모를 것이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 말에
박정호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이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없어.”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히 더 말하면
약해 보일 것 같았다.
현관문이 닫히고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김미경이 말했다.
“아이는…
이제 자기 인생 사는 거죠.”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알아.”
박정호는 대답했다.
알지만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자식은
언제나 보호해야 할 존재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자기 인생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서운했다.
그리고
조금은 안도됐다.
박정호는
아들이 놓고 간 컵을 들었다.
아직 따뜻했다.
그 온기가
금세 식을 것 같았다.
저녁이 늦어지자
그는 혼자 밥을 먹었다.
김미경은 먼저 들어가 쉬고 있었다.
식탁 맞은편에
아들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가
괜히 크게 느껴졌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아들이 집을 떠날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그날이 오면
자신은
어떤 표정으로
문 앞에 서게 될까.
그는
아들의 방 문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의 방은
이미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자식은
이미 어른이었고,
그 사실을
이제는
부모가 받아들여야 할 차례였다.
작가의 말 :
부모의 시간은
자식을 중심으로 흘러왔지만,
자식의 시간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8화는 ‘부모로 남고 싶은 마음’과
‘물러나야 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친구 관계의 균열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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