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휴대폰이 울린 건
아침 아홉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박정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야, 오랜만이다.”
이도현의 목소리였다.
여전히 밝았다.
조금 과할 정도로.
“잘 지내지?”
그 질문은
안부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그냥 그렇지.”
박정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가장 편했다.
“나 요즘 바쁘다.
아직 회사에서 나를 못 놔주네.”
이도현은 웃으며 말했다.
농담처럼 던졌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아직 나는 필요하다.
박정호는
그 말 뒤에 숨은 메시지를
굳이 해석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 되면 점심이나 한 번 하자.”
“그래.”
약속은 가볍게 잡혔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도현은
아직도 현역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에 들어가고,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
자신은
어제 무엇을 했던가.
공원에 앉아 있었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집 안을 서성였다.
그는
괜히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 쉬는 중이다.
곧 뭘 하게 될 거다.
하지만
그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점심 무렵,
김미경이 말했다.
“도현 씨한테서 전화 왔다며?”
“응.”
“아직도 회사 다닌다면서?”
그녀의 말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었지만,
박정호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대.”
“대단하네.”
그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대단하다.
그 말은
비교의 시작이었다.
그는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거지.”
그의 말에는
조금 날이 서 있었다.
김미경은
그 기색을 느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부부 사이에서
점점 자주 선택되는 방법이었다.
오후에
박정호는 혼자 밖으로 나갔다.
괜히 집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도심 쪽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회사 건물들이 지나갔다.
그 안에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버스 안에서
중년 남성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 승진했다며?”
“아직 멀었지 뭐.”
그 짧은 대화가
그를 아프게 했다.
비교는
퇴직과 함께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비교는
직함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하게,
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정호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남의 삶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 왔을까.
그리고
그 비교에서
자신은
항상 스스로를
낮춰왔다는 사실을.
문을 열자
집 안은 조용했다.
김미경은 외출 중이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비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작가의 말 :
비교는
사회에서 벗어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 앞에서
그 감정은 더 선명해집니다.
9화는 ‘남의 시간으로 자신을 재는 마음’을 그렸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도움받는다는 감정의 굴욕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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