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9화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휴대폰이 울린 건

아침 아홉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박정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야, 오랜만이다.”


이도현의 목소리였다.

여전히 밝았다.

조금 과할 정도로.


“잘 지내지?”


그 질문은

안부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그냥 그렇지.”


박정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가장 편했다.


“나 요즘 바쁘다.

아직 회사에서 나를 못 놔주네.”


이도현은 웃으며 말했다.

농담처럼 던졌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아직 나는 필요하다.


박정호는

그 말 뒤에 숨은 메시지를

굳이 해석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 되면 점심이나 한 번 하자.”

“그래.”


약속은 가볍게 잡혔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도현은

아직도 현역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에 들어가고,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


자신은

어제 무엇을 했던가.

공원에 앉아 있었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집 안을 서성였다.


그는

괜히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 쉬는 중이다.

곧 뭘 하게 될 거다.


하지만

그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점심 무렵,

김미경이 말했다.


“도현 씨한테서 전화 왔다며?”

“응.”

“아직도 회사 다닌다면서?”


그녀의 말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었지만,

박정호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대.”

“대단하네.”


그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대단하다.

그 말은

비교의 시작이었다.

그는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거지.”


그의 말에는

조금 날이 서 있었다.

김미경은

그 기색을 느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부부 사이에서

점점 자주 선택되는 방법이었다.


오후에

박정호는 혼자 밖으로 나갔다.

괜히 집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도심 쪽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회사 건물들이 지나갔다.

그 안에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버스 안에서

중년 남성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 승진했다며?”

“아직 멀었지 뭐.”


그 짧은 대화가

그를 아프게 했다.

비교는

퇴직과 함께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비교는

직함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하게,

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정호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남의 삶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 왔을까.

그리고

그 비교에서

자신은

항상 스스로를

낮춰왔다는 사실을.


문을 열자

집 안은 조용했다.

김미경은 외출 중이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비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작가의 말 :

비교는

사회에서 벗어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 앞에서

그 감정은 더 선명해집니다.

9화는 ‘남의 시간으로 자신을 재는 마음’을 그렸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도움받는다는 감정의 굴욕을 다룹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873
  • 기사등록 2026-01-14 10:05:4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