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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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정리하다가

박정호는 오래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겉면이 바래 있었고,

손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글씨였다.


봉투 안에는

사진 몇 장과

접힌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사진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마른 얼굴,

눈빛은 또렷했고

웃음은 가벼웠다.


그는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의 나라는 게

선뜻 이어지지 않았다.

]

종이를 펼치자

손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계획표처럼 보였다.


‘서른다섯 이전에

해외 연수 한 번.’

‘마흔 즈음엔

하고 싶은 일로 옮기기.’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작은 공간.’


박정호는

그 문장들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기억이 났다.

이런 생각들을

분명 했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아니,

회사에 들어간 직후에도.


하지만

그는 그 꿈들을

포기한 기억이 없었다.

다만

계속 미뤘을 뿐이었다.


나중에.

조금 더 안정되면.

이번 프로젝트 끝나고.


그 ‘나중에’가

이렇게 와 있을 줄은

몰랐다.

김미경이 방 문을 두드렸다.


“뭐 찾아요?”

“옛날 거.”


그는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런 게 있었네.”


김미경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이때는


눈이 반짝반짝했네.”

그 말에

박정호는

웃지 못했다.


“나…

이런 생각도 했었어.”


그는 종이를 내밀었다.

김미경은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었다.


“꿈이었네.”


그녀가 말했다.

비웃는 말은 아니었다.

조금 놀란 목소리였다.


“잊고 살았지.”


박정호가 말했다.

잊었다기보다는

덮어두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그날 오후,

박정호는

혼자 동네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젊었을 때의 자신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기대가 더 컸다.

지금의 자신은

안정을 얻었지만

기대는 줄어들어 있었다.


그는 문득

이제 와서

꿈을 떠올리는 게

우스운 일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다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종이를 접지 않았다.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두었다.

잊고 살았던 꿈은

사라진 게 아니라,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박정호는

오랜만에

내일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의 말 :

우리는 종종

꿈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잠시 덮어두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15화는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욕망’을 꺼내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에 대한 후회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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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22 09: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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