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주민센터 강의실 문을 여는 순간,
박정호는 잠시 멈춰 섰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동그랗게 놓인 책상들,
그 위에 놓인 이름표.
낯선 공간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공기가 느껴졌다.
“처음 오셨어요?”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머리가 희끗했고,
눈웃음이 인상적이었다.
“네.”
박정호는
짧게 대답했다.
“저도 얼마 안 됐어요.
괜히 긴장되죠.”
그 말에
박정호는
조금 안심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
예전에 했던 일,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차례가 돌아오자
박정호는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박정호입니다.
최근에…
퇴직했습니다.”
그 말 뒤에
설명이 붙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무도
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편했다.
쉬는 시간,
그는 커피 자판기 앞에 섰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호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진이?”
오세진이었다.
중학교 교사로 오래 일했던
그 친구.
“여기서 다 보네.”
세진은
웃으며 말했다.
예전보다
조금 마른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그대로였다.
“너도?”
“응.
나도 작년에 은퇴했어.”
그 말은
대수롭지 않게 나왔지만,
그 안에는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의
톤이 담겨 있었다.
둘은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섰다.
“잘 지냈어?”
세진이 물었다.
“잘… 지내려고 하는 중.”
박정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나도 자주 써.”
짧은 웃음이
오갔다.
예전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가 더 잘 살았는지,
누가 더 힘들었는지
비교하지 않아도 됐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강의가 끝나고
세진이 말했다.
“다음 주에도 오지?”
“아마도.”
박정호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끝나고 차 한잔 할까.”
그 제안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정호는 생각했다.
오래된 얼굴은
과거를 끌어오는 게 아니라,
지금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문득
휴대폰을 꺼내
세진의 번호를 저장했다.
‘오세진.’
그 이름을
천천히 눌러 적으며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작가의 말 :
오래된 인연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입니다.
같은 시간을 지나온 사람 앞에서는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19화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이어지는 만남’을 그렸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감정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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