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훈
[한국심리학신문=김자훈 ]
필자 촬영.
필자는 오래전에 공개 인물정보에 내 이름을 등록해 두었다. 대략 7~8년 전, 네이버 재직 당시 공개 이력과 활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였다. 이후 그 정보는 중간중간 소소한 업데이트를 거쳤을 뿐,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다만 공개 정보의 범위와 내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할과 맥락의 변화에 따라 관리되어 왔다. 이는 노출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이력과 기록을 어떻게 책임 있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종종 특정 시점의 역할이 개인의 전체 정체성처럼 오독되는 일이 발생한다. 직책은 본래 시간적이고 조건적인데, 해석은 이를 영구적인 표식처럼 취급한다. 이 과정에서 역할의 시작과 끝, 맥락과 조건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단편적인 호칭뿐이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말한 것처럼, 개인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의도와 무관한 인상 관리’를 경험한다. 문제는 그 인상이 개인의 설명보다 빠르게 고정될 때 발생한다. 그리고 그 고정은, 설명을 덧붙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낳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존재인가.
AI와 알고리즘은 이 질문을 더욱 급박하게 만든다. 판단과 실행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해석되고 규정된다. 정체성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말한 ‘정체성의 지속성’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는다. 이제 정체성은 현재의 직책보다, 누적된 기록과 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읽힌다.
HR 영역에서 오래 일하며, 나는 하나의 반복되는 장면을 수없이 보아왔다. 임원이나 고위 리더가 실질적인 조직을 맡고 있지 않은 시기에도, 과거의 직책과 역할은 공식 문서와 경력 증명 속에서 유지된다. 이는 개인의 현재 상태를 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조직 안에서 수행해온 책임의 궤적을 단절 없이 보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가깝다.
반면, 동일한 논리가 모든 개인에게 일관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어떤 직책은 일시적인 역할임에도 과도하게 현재화되고, 어떤 경험은 누적된 책임임에도 쉽게 삭제된다. 이 비대칭성 속에서 개인은 때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축소하거나, 불필요하게 수정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조직은 항상 개인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내부 평판은 상황과 권력 지형에 따라 급변한다. 그러나 외부에 축적된 사고와 기록은, 특정 직책의 유무와 무관하게 개인이 완전히 타인의 해석에 종속되지 않도록 돕는 기준점이 된다. 중요한 것은 직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기록을 관리하느냐이다.
이 맥락에서의 브랜딩 태도는 허영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에게 부여된 책임을 관리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더 높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하게 낮아지지 않기 위해 기록을 관리하려는 욕구에 가깝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 기록은 언제나 권력과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공개 프로필을 확장하거나 과장하기보다, 공개하기로 선택한 정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두되, 역할의 종료가 곧 정체성의 후퇴로 기록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맥락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방식에 가깝다.
최근 몇 년 사이 공개 인물정보의 접근성과 신청 장벽이 낮아지며,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와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제도와 환경은 변했지만, 인식은 종종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이 괴리는 정보의 추가나 수정, 혹은 의도적인 비수정마저도 쉽게 오해의 대상이 되는 구조를 만든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한 선언이 아니다. 다만, 어떤 기록은 남기고, 어떤 수정은 하지 않는 선택 또한 하나의 책임일 수 있음을 남겨두기 위한 기록이다. 내가 지키려는 것은 특정 직책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을 정체성의 관리 기준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원칙을 남기고자 한다.
사실은 짧게,
해석은 낮게,
태도는 길게.
이 기준은 AI 시대에도, 그리고 직책의 변화와 무관하게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역할의 유무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기준을 지키느라 조용히 애쓰고 있다면, 그 태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드러내지 않아도 끝까지 지켜온 궤적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AI 시대에도 쉽게 삭제되지 않을 가장 단단한 정체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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