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민
[한국심리학신문=안수민(12sumin12@korea.ac.kr)]
이 글은 특정 인물을 진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송에서 보였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완벽주의의 심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의 칼질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가.
넷플릭스 방송 <흑백요리사>에서 '요리괴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셰프는 식재료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손질하고, 주방의 모든 것이 자신의 원하는 대로 정돈되어야만 요리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면서 "대단하다"는 느낌과 함께,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무거운 질문도 생긴다.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완벽주의가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완벽주의하면 우리는 대개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완벽주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자기지향적 완벽주의로, 스스로가 원하는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본인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사회부과적 완벽주의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 완벽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부모의 기대, 주변의 시선, 회사에서의 평가 — 이런 것들로 인해 "잘못하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압박감을 강하게 받는 경우다.
이 두 종류의 완벽주의는 겉에서 볼 때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둘 다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주는 영향은 꽤 다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스스로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자.
"내가 완벽하려고 할 때, 그 출발점은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되기 때문인가?"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아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천천히 느껴보자. 스스로 만족하고 싶다는 쪽이 강하다면 자기지향적 완벽주의에 가깝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 걱정된다면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어떤 쪽이든, 완벽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느끼고 돌아보는 것, 그것이 건강한 출발점이다.
'요리괴물'의 정밀한 칼질과 깔끔한 정돈은, 우선 자기지향적 완벽주의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타인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는 것이었을 때, 이런 완벽주의는 때로 긍정적인 면을 가진다.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집중력도 높은 경우가 많았다 (Almasy 외, 2025). 또한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며,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옥가희, 2018).
실제 주변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회사의 중요한 발표 자료를 만들고 있는 A씨는 밤이 깊어지는 것을 신경 안 쓰고 글꼴과 간격까지 한 번, 두 번 수정한다. 동료가 "이미 충분히 좋잖아"라고 말해도, A씨는 스스로가 "이건 아직 아니다"라고 느끼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수준을 향한 것이고, 그 안에 건강한 성취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완벽주의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높아질수록,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자신을 탓하고 괴로워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완벽의 기준이 높을수록, 스스로를 향한 비난도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요리괴물'의 칼질이 그렇게 정밀했던 건,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요리괴물'이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을까.
후자에 가깝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의 이야기가 된다.
방송 안에서 '요리괴물'이라는 별명과 그에 맞는 기대를 계속 받을수록,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질 수 있다. 심사위원의 평가 한마디에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모습도, 그 압박감이 얼마나 클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우리 주변에서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학생 B양은 부모님이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학점이 높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번엔 그냥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부모의 기대에 여전히 못 미친다는 느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좋은 결과가 나와도 기쁨보다 불안이 더 큰 경우이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팀장 C씨는 자신의 팀에 대한 상사의 기대가 높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팀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게 된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압박은 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결과적으로 팀 전체의 분위기와 성과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에서도 이 종류의 완벽주의가 가장 마음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가 강할수록, 우울과 불안이 심해지고, 삶에 대한 만족감은 떨어진다. (전명인, 이희경, 2011)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 이런 압박이 심할수록 우울증의 위험도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Huggins, 2008).

완벽주의에 가장 이상한 면이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깊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중요한 발표가 앞에 있는데, "어차피 완벽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경우이다. 그러면 준비를 미루거나, 의도적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두는 경우도 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준비를 제대로 못 했어서"라고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실패의 책임이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자기 구실 만들기"라고 한다. 그리고 연구에서는,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가 강할수록 이런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도연, 2013)
요즘 SNS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주변이 모두 "완벽한 삶"을 보여주는 것 같은 환경에서, 내가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완벽하지 못하면 안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 심리이다.
완벽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높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하는 것은, 건강하게 작동할 때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자신을 탓하는 패턴이 반복될 때는, 그것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자.
1. 스스로에게 친구처럼 말하기
실수했을 때,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들어보자. "왜 이것도 못해?", "정말 한심하다"처럼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만약 친한 친구가 똑같은 실수를 했다면 당신은 그 친구에게 어떻게 말할 건가? 아마도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하지 않을까.
자신에게도 똑같이 해보자. 완벽하지 못한 날이라도, 그것을 자기 비난의 이유로 삼지 않는 것. 대신 "오늘 충분히 했어", "이 정도면 잘한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처음엔 어색하고 거짓말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가 쌓이면,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2. '충분히 좋은' 기준 만들기
완벽주의자들은 종종 0점과 100점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100점이 아니면 모두 실패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는 의도적으로 "충분히 좋은" 기준을 만들어보자.
예를 들어, 보고서를 쓸 때 "완벽한 보고서"와 "제출 가능한 보고서"를 구분하는 것이다. 완벽한 보고서는 10시간이 필요하지만, 제출 가능한 보고서는 5시간이면 된다. 그리고 5시간짜리를 목표로 삼는 것이다. 처음엔 불안하고 찝찝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5시간짜리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연습의 핵심은 "완벽"과 "충분"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면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 완벽에 대한 강박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3. 과정을 기록하고 인정하기
완벽주의자들은 결과만 본다. 목표에 도달했는지, 아닌지만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는 잘 보지 못한다.
하루 끝에 "오늘 한 일" 목록을 작은 노트나 메모장에 적어보자. "못한 것"이 아니라 "한 것"만 적는 것이다. "회의 자료 준비했다", "친구에게 연락했다", "30분 운동했다" 이런 식으로요. 완벽하게 못 했어도 괜찮다. 조금이라도 했다면 적는 것이다.
이걸 일주일 정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성취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부드러워질 수 있다.

방송 속 '요리괴물'의 조리대를 보면서 우리가 진짜 감탄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밀리미터 단위의 정확성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진심, 재료 하나하나를 대하는 집중, 그리고 요리에 쏟아붓는 온전한 열정, 그것이 우리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입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결과를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불완전하더라도 진짜로 살아가는 것. 실수해도 괜찮고, 부족해도 괜찮은 그 여유 안에서, 오히려 더 진짜 우리다운 삶이 펼쳐질 수 있다. 완벽한 괴물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으로.
[출처]
Huggins, L., Davis, M. C., Rooney, R., & Kane, R. (2008). Socially Prescribed and Self-Oriented Perfectionism as Predictors of Depressive Diagnosis in Preadolescents. Australian Journal of Guidance and Counselling, 18(2), 182-194.
옥가희. "중등교사의 직무스트레스와 직무만족도의 관계에서 다차원적 완벽주의의 조절효과." 국내석사학위논문 신라대학교 교육대학원, 2018. 부산
이도연. "대학생의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와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의 관계." 국내석사학위논문 경상대학교 대학원, 2013. 경상남도
전명임 and 이희경. (2011). 다차원적 완벽주의와 우울, 주관적 안녕감 간의 관계: 사회적 유대감의 매개효과. 인간이해, 32(1), 67-83.
Almásy, C., Soltész-Várhelyi, K., & R. Fedor, A. (2025). Self-Oriented and 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 Among Hungarian Professional Folk Dancers. European Journal of Mental Health, 20, e0043,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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