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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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영은(kukuku07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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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뻔한데도” 흔들릴까


“또 저런 전개야?”


영화관에서, 드라마를 보며, 혹은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쉽게 이렇게 말한다. 너무 뻔하다고, 클리셰 같다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그 말에는 약간의 우월감과 거리 두기가 섞여 있다. 나는 저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상하다. 우리는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하면서도 끝까지 본다. 그리고 결국, 예상 가능한 장면에서 정확히 예상 가능한 감정을 느낀다. 웃고, 설레고, 때로는 울기까지 한다.

클리셰는 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새롭지 않고, 안전하며, 도전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여전히 고백할 때 꽃을 들고, 영화 속 해피엔딩을 은근히 기대하며, “그래도 결국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싫다고 말하면서도, 반응해 버리는 감정. 이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이 글은 클리셰를 단순히 진부한 이야기로 판단하기보다, 왜 그런 이야기들이 반복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반복이 지금 우리의 삶과 감정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르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클리셰는 실패한 상상이 아니라, 검증된 감정의 구조다


클리셰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이야기와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효과를 증명해 온 감정의 구조에 가깝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유창성(cognitive fluenc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1].


인지적 유창성이란, 사람이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일수록 더 편안함과 호감을 느끼는 경향을 의미한다. 우리는 복잡한 이야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서사, 낯선 감정보다 익숙한 감정선에서 심리적 에너지를 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감정이 따라온다.


미국 심리학자 노버트 슈바르츠(Norbert Schwarz)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처리하기 쉬운 정보일수록 더 신뢰하고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측 가능한 전개, 익숙한 결말, 이미 여러 번 접해 본 감정 구조는 우리의 사고 부담을 줄여준다.


즉, 클리셰는 게으른 상상이 아니라 효율적인 감정 전달 방식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하지만 순수한 주인공이 결국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이 서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이는 이 이야기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안정적인 감정의 궤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클리셰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클리셰를 부정하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는 클리셰를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워하거나 경계할까?


“난 그런 뻔한 거 안 믿어”, “나는 남들과 다르고 싶어”라는 말은 특히 대학생 세대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태도에 가깝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차별화 욕구(need for uniqueness)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되고 싶어 하며, 또래 집단 안에서는 특히 ‘평범함’보다 ‘다름’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문제는 이 욕구가 강해질수록, 우리는 익숙한 감정이나 선택마저도 남들 같아 보일까 봐 스스로 밀어내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클리셰는 종종 ‘취향이 없는 선택’, ‘생각하지 않은 선택’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리셰를 거부하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시대적 클리셰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흔해진 순간,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삶에도 클리셰는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클리셰는 이야기 속 장치를 넘어 우리의 삶으로 확장된다.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경로는 흔히 ‘인생의 클리셰’처럼 이야기된다. 누군가는 그 길을 너무 당연하다고 느끼고, 또 누군가는 그 틀에서 벗어나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클리셰가 강요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남들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게 실제로 안정과 만족을 주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클리셰는 우리를 가두는 틀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방향을 잃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지도이기도 하다.


문제는 클리셰를 따르느냐, 깨느냐가 아니다.
그 선택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그땐 왜 몰랐을까, 내가 싫어했던 것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걸


왜 그렇게 단순해 보이는 감정과 선택들을 애써 밀어냈는지, 왜 남들과 비슷해 보일까 봐 스스로의 마음을 의심했는지. 어쩌면 우리는 ‘뻔함’을 경계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왔는지도 모른다. 클리셰에 반응하는 순간, 그것이 나를 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때 내가 싫어했던 감정들은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이 시간을 버티게 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이야기에서 안도했고, 예상 가능한 결말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불안을 견뎠다. 클리셰는 나를 대신해 감정을 설명해 주었고, 말로 정리하지 못한 마음에 형태를 부여해 주었다.


클리셰는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통과하는 우리의 삶은 매번 다르다. 누군가에게 클리셰는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흔들리는 시기에 잠시 붙잡을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새로운가’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문제는 클리셰를 따르느냐, 깨느냐가 아니다.


그 선택을 남들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감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주는지 인식하고 있는지다. 모두가 벗어나려 할 때 머무는 선택도,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길 때 다른 길을 택하는 선택도, 충분히 사유된 것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남들이 웃는 장면에서 웃고, 울어야 할 순간에 울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그 안에서 나에게 필요한 감정만을 골라 다시 구성해보려는 태도.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조금씩 다른 버전의 클리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은 클리셰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던져보는 시기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




출처

1) Schwarz, N. (2004). Metacognitive experiences in consumer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 Reber, R., Schwarz, N., & Winkielman, P. (2004). Processing fluency and aesthetic pleasure. Psychological Science.

3) Snyder, C. R., & Fromkin, H. L. (1980). Uniqueness: The human pursuit of difference. Spr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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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3-04 08: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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