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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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수현B (gemma_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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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드라마 <안나>의 이 대사는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일기장은 오직 나만 읽는 공간이다. 타인의 평가도, 사회적 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곳에서조차 진실을 그대로 적지 못할까.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도 아닌데, 스스로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미의 이야기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심리적 단서를 제공한다. 


<안나> 속 유미는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해 점차 ‘안나'라는 전혀 다른 인물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처음에는 현실의 자신을 벗어나고자 한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설정은 설정을 덧붙이며, 결국 그녀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기대에 맞춰 연기하는 동안 원래의 유미는 점점 흐릿해진다. 


하지만 이건 극적인 드라마 속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우리 역시 혼자 있을 때조차 스스로를 미화하고, 바깥에서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조금씩 연기하며 살아간다. SNS 속 사진을 고르는 순간에도 어떤 모습이 더 나아 보일지 계산하고, 자기소개를 과장하며,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습관적인 대답까지. 작은 거짓말 하나하나가 쌓이며 우리의 선택과 태도, 더 나아가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유미의 극단적 선택은 그 심리적 민낯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왜 인간이 거짓말로 자신과 타인을 속이게 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유미는 어릴 적 결핍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동시에 완벽하고 화려한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품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그 틈을 메우기 위한 심리적 장치는 강하게 작동한다. 처음에는 타인을 향한 거짓이었지만, 점차 그 거짓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결국 그녀는 ‘안나’라는 삶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자기기만’이다. 자기기만은 단순한 거짓말과 다르다. 서강대 서동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스스로의 행동이나 결정을 ’내가 한 게 아니다'라고 합리화하며, 그 핑계조차 진실이라고 믿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유미가 일기장에조차 거짓을 적고, 점차 ‘안나’라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과정 역시 이러한 자기기만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축은 ‘사회적 압력과 인정 욕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자아를 정의하고, 집단의 기대에 부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집단 속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럽지만, 그 강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본래 모습은 점차 후순위로 밀려난다.


유미가 명품 구두와 빌린 옷으로 자신을 치장한 장면은 단순한 허세라기보다, ‘자기현시욕’의 표현이다. 자기현시욕은 타인에게 긍정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보편적 욕구다.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압도할 때 발생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구성된 자아는 일시적으로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무대가 사라지는 순간 극심한 공허를 남긴다. 유미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우리 모두가 타인의 눈과 사회적 기대 속에서 자신을 재단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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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미의 비극은 특별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심리적 기제가 통제력을 잃은 결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오히려 우리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정말로 유미와 다를까. 혼자 보는 일기장 속에서조차 스스로를 포장하고,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적어 내려간 적은 없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조금 더 나은 나’를 연기하다가, 그 모습이 진짜 나인지 헷갈린 적은 없었을까.


중요한 것은 거짓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어느 정도의 자기연출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연출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때때로 멈춰 서서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금의 나는 나를 설득하고 있는가, 속이고 있는가.”


거짓으로 쌓은 삶은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토대는 쉽게 흔들린다.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일은 느리고 서툴지만 단단하다. 어쩌면 진짜 용기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를 직면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일기장 속 문장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유우키 유우, 2019, 만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는 처음 시작하는 거짓말의 심리학, 우듬지

2) 한덕웅, 성한기, 강혜자, 이경성, 최훈석, 박군석, 김금미, 장은영, 2005, 사회심리학, 학지사

3) 서동욱, 2013, 사르트르에서 병리적 의식과 자기기만, 한국현상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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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3-04 08: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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