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아침 햇살이
천천히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고,
급히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박정호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예전 같았으면
퇴근 이후의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
해야 할 일이 끝난 뒤
남겨진 시간.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그는
침대에 잠시 앉아
오늘을 떠올렸다.
주민센터 수업이 있는 날.
수업이 끝나면
세진과 차를 마시기로 했고,
저녁에는
김미경과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날도 아니었다.
부엌에서
김미경이 말했다.
“오늘 일찍 나가요?”
“응.
조금 일찍 가보려고.”
“잘 다녀와요.”
그 말은
응원처럼 들렸다.
밖으로 나서며
박정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전에는
느림이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은
삶의 속도라는 걸
그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선생님.”
누군가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아직도
그 호칭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수업은
완벽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질문이 많았고,
설명은 반복됐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두름도,
초조함도 없었다.
“괜찮아요.
다시 해보면 돼요.”
그가 한 말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다음 주에 봬요.”
그 말 속에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가
그를
현재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정호는 생각했다.
퇴근은
끝이 아니었다.
하루의 역할이
바뀌는 순간일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퇴근,
그리고
삶으로의 출근.
저녁 무렵,
김미경과 나란히 걸으며
그는 말했다.
“나…
요즘 괜찮아.”
김미경은
그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보여요.”
그 말이
그에게는
충분했다.
집에 돌아와
그는 마지막으로
노트를 펼쳤다.
처음에는
불안으로 가득 찼던 노트였다.
지금은
짧은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는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펜을 내려놓으며
박정호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삶은
다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이미 계속되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그 흐름을
조금 더
자기 속도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작가의 말 :
이 이야기는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리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은
끝이 아니라,
비로소 삶이 시작되는 구간일지도 모릅니다.
긴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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