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충‘이었던 나는 ‘영포티‘를 거쳐 ‘틀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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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충'이었던 나는 '영포티'를 거쳐 '틀딱'이 된다. - 점점 심해지는 우리나라의 세대 갈등
  • 기사등록 2026-03-14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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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심소은(zzzz7435@naver.com)]



'급식충', '영포티', '틀딱'. 이 단어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급식충'은 '급식'과 벌레를 뜻하는 '충'이 합쳐진 단어로, 급식을 먹는 아동과 청소년들을 벌레에 비유해 낮춰 부르는 용어이다. '영포티'는 '젊은'을 의미하는 영단어 'Young'과 '40대'를 의미하는 영단어 'Fourty'의 합성어로, 처음에는 젊음을 추구하는 중년들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억지로 젊음을 흉내 내는 중년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변질되었다. '틀딱'은 '틀니'의 '틀'과 '딱딱 소리'의 '딱'을 결합한 단어로, '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고령층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단어이다. 이 세 가지 단어들 외에도 이미 초딩, 잼민이, 노인네처럼 특정 세대를 비하하고 낮추는 표현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표현들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새롭고 참신하게 발전하는 중이다.



우리는 모두 '급식충'이었다.


아무래도 아동과 청소년들이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어른들의 미움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아동과 청소년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동과 청소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아동과 청소년들을 '급식충', '잼민이'라 칭하며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2022년 3월 전국 아동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급식충', '잼민이'와 같은 용어가 사용되는 현상에 대해서 ‘어린이 중 유독 철이 없고 막말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란 답변이 35.8%로 가장 많았다. 이런 용어를 쓰는 어른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 1위는 ‘어린이를 존중해주세요’(25.6%)가 선정됐다. ‘어린이도 똑같은 사람입니다’(23.8%),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습니다’(23.0%)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조사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동들이 어른들에게 자신들은 미숙한 존재, 철이 없고 피해를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어려도 본인들이 곳곳에서 어른들에게 미움, 혐오, 증오를 받고 있다는 걸 다 안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유독 철이 없고 막말하는 일부 아이들로 인해 전체 아동과 청소년을 향한 어른들의 비난이 존재하는 현상 자체를 다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아동과 청소년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가? 아무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미성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비난할 게 아니라 어른스럽게 아직 성장하고 있는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성인은 아동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계속해서 어른들이 아동이나 청소년을 비하하는 단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자신이 어렸을 때 어른들이 아무런 죄가 없는 나에게 '급식충', '잼민이'라고 말했다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는가? 그들은 우리가 거쳐온 길이다. 우리도 모두 그들의 나이였을 때 충분히, 어쩌면 그들보다 더 방황했고, 실수했고, 몰랐고, 미숙했고, 부족했을 것이다. 이를 잊지 않고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영포티'가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영포티'는 젊음을 추구하는 중년들을 표현하는 용어였다. 젊어지고 싶지 않은 중년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젊음을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는 이 당연한 욕구를 비난하게 되었을까? 많은 매체에서 '영포티'로 비난받는 중년들은 그들의 젊음을 추구하는 방식이 모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그들은 젊음을 쫓기 위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굉장히 개방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사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권위적인 면을 갖고 있는 모순이 드러난다. 즉, 젊음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젊어지고 싶어 하면서도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중년들의 모습이 젊은 세대에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중년들이 권위적인 모습을 버리기 어려운 것에는 우리나라의 유교 사상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연장자를 공경해야 한다는 유교 이념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어른 공경에 대해 배운다. 그래도 이제는 시대가 점점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어서 청년들은 중년들보다 개방적이고 개인주의가 강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년들은 청년들보다 내면에 유교 이념이 훨씬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아무리 시대가 많이 변해도 중년들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공경받고 싶을 수밖에 없고, 나이가 어린 사람일수록 연장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시선에서는 젊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 권위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중년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중년들이 젊음을 쫓으면서도 권위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중년들의 특성으로 인해 모든 중년들이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젊음을 추구하면서도 연장자로서 공경받고 싶어 하는 중년들은 다 잘못된 것인가? 젊음과 권위적 태도를 둘 다 가지고 싶어하는 중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젊어지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아무리 젊게 살고자 노력해도 젊은 사람들의 마인드까지 다 장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현상이기에 그들을 이해하기 싫을 수 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MZ세대의 다음 세대는 MZ세대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즉, 세대의 특징은 결국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MZ세대의 다음 세대 입장에서는 MZ세대가 '영포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틀딱'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인의 인구가 20%가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렇게 노인이 많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혐오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김욱(2003)의 연구에 따르면, 전반적인 우리나라의 연구에서 60세 이상 노인 중 86.2%가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혀졌다. '연령주의(ageism)'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연령주의(ageism)'란 특정 연령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및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차별을 일컫는 표현이다. 한마디로, 어떠한 나이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현상을 말한다. 모든 연령층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에 적용되는 단어이지만, 노인을 향한 편견 및 고정관념과 사회적 차별을 나타내는 단어로 의미가 좁혀졌다. 그만큼 다른 연령대보다도 노인 세대가 사회에서 차별을 많이 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교 사상에 따라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고 배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쩌다가 '틀딱'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노인을 혐오하게 되었을까? 중년을 향한 혐오와 비슷하게 노인들의 권위적인 태도가 젊은 사람들에게 나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년층은 중년층보다도 보수적인 경향이 더 강할 것이고, 젊은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또한, 초고령사회에서 젊은 세대에게 노인은 부양해야 할 존재이자 사회적으로 부담이 되는 존재이다. 이 현상을 노인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노인들은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이 달가운 존재일 수가 없다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며 '자기 연령주의'에 빠진다. '자기 연령주의'란 노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내재화하여 삶의 질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다. 즉, 노인들은 자기 자신을 차별받아 마땅한 존재로 치부함으로써 타인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차별을 당하는 비극을 맞는다. 


일부 권위적인 노인들 때문에 모든 노인들을 비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고령화 현상 때문에 모든 노인을 짐처럼 여기고 배제하는 게 올바른 것일까?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기에 가치관, 생활양식 등에서 세대 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술적, 과학적 발전을 이뤄 나가고 있기에 앞으로도 세대 간의 차이가 크게 날 수도 있다. 그러면 현재 노인을 비난하는 세대가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됐을 때, 젊은 세대에게 비난을 받는 미래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걸어갈 길이다. 미래세대에게 무시와 비난이 아닌 공경을 받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조롱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내가 미래세대에게 받고 싶은 대접을 노인분들께 실천해 보자. 분명히 자신이 노인이 됐을 때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애들'은 '라떼는...'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아동과 청소년, 중년, 그리고 노년을 향한 차별에 대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2030세대는 연령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청년 또한 그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연령층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을 때가 있다. 급식충, 틀딱처럼 청년 세대를 비난하는 용도로 존재하는 단어들이 만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 곳곳에서 MZ세대를 향한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의 기준에서는 청년들이 어른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일 때가 있어서 2030세대 전체를 향해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일부 청년들에게만 해당한다. 모든 청년들이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고, 예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 다 그래."라고 말을 하며, 예의가 없는 일부 청년을 모든 청년들과 함께 묶어서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이 말하는 '요즘 애들'은 사실 중장년층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어른들도 알다시피 세상이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들이 청년들로 하여금 본인이 성장하던 시절을 기준으로 어른을 공경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 보니 자꾸 젊은 사람들에게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듣기 싫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른들의 입장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존중과 공경을 받고 싶을 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게 아니다. 다만, 세상이 많이 변한 만큼 그 기준을 어느 정도는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어른들께 아주 큰 목소리로, 90도로 인사를 드렸다면, 이제는 좀 작게, 45도로 인사를 하더라도 인사를 드렸다면 그걸로 수용할 수 있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어른들이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고, 여전히 높은 기준의 예의를 바랄 수 있다. 혹은 기준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에 충족되는 청년이 별로 없을 수 있다. 어쩌면 어른을 향해 욕을 하는 등 정말 누가 봐도 선을 넘는 청년을 접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신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으면, 그 청년은 본인에게 예의 없는 청년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청년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걸 어른들이 꼭 알아줬으면 한다. 자신이 비난하는 청년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청년일 수 있다. 즉, 예의에 대한 기준도 중장년층이라고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 방식대로 풀면서 모든 청년들을 무례한 사람들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일반화의 위험성


세대 갈등은 결국 과잉 일반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아동과 청소년들이, 모든 청년들이, 모든 중년들이, 모든 노인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겠는가? 주변의 가족과 친척을 떠올려보자. 나의 자식이, 조카가, 혹은 사촌 동생이 남들에게 '급식충' 소리를 들을 만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 나의 손주가, 자식이, 언니가, 오빠가, 동생이 어른에게 예의가 없는 '무례한 청년'인가? 나의 엄마, 아빠, 이모, 고모, 삼촌이 남들에게 '영포티' 소리를 들을 만큼 모순적인 사람인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틀딱' 소리를 들을 만큼 사회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친척이다. 일부 사람들의 특징을 일반화하여 죄가 없는 사람들까지 그들과 묶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세대 갈등은 말짱 도루묵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장애인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의 특징은 서로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삶을, 남성이 여성의 삶을, 성소수자가 비성소수자의 삶을, 비성소수자가 성소수자의 삶을 경험할 수 없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삶을,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삶을 경험하기 힘들다. 인간은 다른 인종의 삶을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연령 차별은 다르다. 내가 일부러 경험하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은 신생아로 태어나 저절로 신체적 성장을 하면서 나이를 먹는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한 신생아,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삶을 순서대로 경험하게 된다. 결국 모든 연령이 내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혹은 겪게 될 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을 묶어서 비난할 필요가 있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연령 차별이 다른 그 어떤 사회적 차별보다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까지 다 이해하고 포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특정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죄가 없는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지는 말자. 설령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어도 피해를 받은 그 행동에 대해서만 다루고, 그 사람의 나이를 엮어서 비난하지 말자. 나이로 비난하는 것은 그 나이대의 모든 사람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걸었던 길이,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우리가 걸어갈 길이 꽃길이 될 수 있도록 예쁘게 잘 가꿔주자. 부디 미래세대끼지 꽃길을 걸어갈 수 있게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 주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참고문헌

5) 최성재, 김문정. SPEAKER 3 한국의 연령주의 : 현황과 사회적 대응 (Ageism in Korea). 한국노년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6) 김주현, 오혜인, 주경희. (2020). 노인차별 경험과 자기연령주의(self-ageism). 한국노년학, 40(4), 659-689.

7) 김욱. (2003). 노인차별의 실태 및 관련요인에 관한 탐색적 조사연구. 한국노년학, 23(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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