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평생 안 뿌리던 향수를 뿌렸다. 나에게 술 냄새가 난다며 선배가 빌려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겹의 냄새를 더 걸쳐 펑퍼짐해진 상태로 동아리방을 나섰다. 심리학에서 봄은 조증의 계절이라고 했는데, 무언가 팽창해 버리기 직전의 골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푹 꺼져있는 풍경 사이로, 여러 종류의 냄새를 넘실대며,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지만 부유했다. 얼굴은 벌갰고, 머리는 아팠다. 묘하게 붕 떠 있었지만 그것은 해방감 같은 감정이 아니라 국물에 둥둥 떠있는 고기 기름에 가까웠다. 어딘가로 날아갈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위의 글은 필자가 언젠가의 개강 첫날에 적었던 수필의 일부분이다. 다시 날이 따뜻해지고 있는 지금,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봄은 예로부터 ‘시작’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계절이다. 추위가 가시고, 아침이 더 빨라지며,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 그리고 우리의 많은 사회적 의례도 봄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입학 및 개학이라고 생각한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어쩐지 본격적으로 무언가 태동하는 것은 봄이라는 느낌도 든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는 계절.
어쩐지 번잡하다는 느낌도 드는 이 봄을,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맞이하는지 궁금하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살 통계 연보에 따르면, 봄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로 2021년부터 3년간 월별 자살 사망자 수가 봄(3~5월)이 겨울(12~2월)보다 20%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으로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 불린다.
‘스프링 피크’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일조량의 변화, 호르몬의 변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다만, 오늘은 이러한 생물학적인 이야기보다 우리가 ‘봄’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
내가 위의 수필을 적었을 당시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딱 이 소제목과 같다. 봄바람은 내 등을 떠미는데, 정작 나는 그 바람을 돛에 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휘청이는 기분.
사실 우리가 봄에 유독 휘청이는 이유는 단순히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봄은 사회적으로 '시작'을 강요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입학, 개강, 새로운 프로젝트, 혹은 취업 준비와 같은 단어들이 '새출발'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여 우리에게 배달된다. 이 시기에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압박감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남들은 모두 제 속도를 찾아 매끄럽게 출발선을 떠나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겨울의 무거운 코트를 벗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사회적 지체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고 일조량이 늘어나면 생물학적으로 활동량은 증가하지만, 이것이 곧장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늘어난 활동량은 심리적 피로를 가중시키고, "이 좋은 날씨에 무언가 활기찬 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감은 고립된 개인에게 더 큰 외로움을 안겨줄 수 있다.
가장 잔인한 것은 봄의 '밝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눈부신 햇살 아래서 야외 활동을 즐기며 생동감을 뿜어낼 때, 내면의 우울을 겪는 이들은 그 빛에 대비되어 자신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세상은 온통 파스텔 톤으로 채색되는데 나만 흑백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는 감각. 그 정서적 결핍은 겨울의 추위보다 봄의 온기 속에서 더 날카롭게 폐부를 찌른다.
결국 봄의 우울은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조바심과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겠다'는 무력감이 빚어낸 합작품인 것 같다. 그러니 새학기의 설렘으로 가득 찬 캠퍼스, 그 부산스러운 소음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면 기억했으면 한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는 다른 계절이 시작의 계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참고 문헌
1) “봄 타는 줄 알았는데… 계절성 우울증?”, <의학신문>(2025.04.17),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6708
2) “봄철 위험신호, 스프링 피크를 조심하세요!”, <강남구청 카드뉴스>(2024.04.03), 봄철 위험신호, 스프링 피크를 조심하세요! | 강남구청 > 강남소식 > 카드뉴스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