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파국화, 우리는 왜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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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조찬희(byliner_cho@naver.com)]


봄 기운이 다가오는 2월의 어느 오후, 기업 채용 면접을 마친 한 청년이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창 밖에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방금 치른 면접에서 잠깐 말을 더듬은 순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더듬던 그 순간, 면접관의 표정이 잠시 굳어진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준비가 부족해 보였던 건 아닐까.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면접관의 표정은 점점 부정적인 신호로 느껴진다. ‘이번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고개를 든다. 그 한 번의 말더듬이 모든 평가를 결정지었을 것만 같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탈락 통보를 받은 듯하다.

 

이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결과를 최악의 결말로 확대 해석하는 사고는 심리학에서 ‘파국화(catastrophizing)’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인지적 정서조절전략이다. 인지적 정서조절전략은 크게 적응적 전략과 부적응적 전략으로 나눠지는데 파국화는 타인비난, 자기비난, 반추와 함께 부적응적 전략에 속한다. 

 

파국화는 특정 상황의 위협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예기불안으로, 특정 상황의 부정적 측면을 극대화하고 통제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이러한 파국화는 한국 청년들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사고 흐름이다. 2020년대 한국 청년들은 작은 실수에 크게 낙담하며, 한 번의 실수가 전체 평가와 더 나아가 인생을 좌우할 것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무엇이 한국 청년들을 파국화라는 늪에 빠져들게 하는가.

 

파국화의 가장 큰 원인은 결과 중심 평가이다. 한국 사회는 한 사람이 결과를 얻기 위해 거쳐온 과정은 외면한 채 결과만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합격과 탈락,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세계에서 과정은 쉽게 가려진다. 청년들은 과정에서의 실수 한 번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체감하며, 그 압박감은 작은 변수마저 치명적인 결함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파국화는 한 사건의 결과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면접 탈락이나 시험 불합격은 인생이라는 긴 평행선 위에 찍힌 하나의 작은 점일 뿐이다. 그 점 하나가 인생을 대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파국화는 그 작은 점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고,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한다. 파국화에 빠진 사람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닌 능력 부족으로 해석한다. 늪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칠수록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처럼 이러한 사고의 흐름이 매 사건마다 반복될수록 파국화는 점점 악화된다.

 

문제는 위와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파국화가 단순한 부정적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국화는 불안을 증폭시키며 자연스럽게 스트레스의 주원인이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결과를 최악으로 상상하는 순간, 우리의 신체는 이미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고 판단한다. 심장은 빨라지고, 머릿속은 하얘지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는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 결과 실제 수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서 기대에 못 미친 수행은 다시 파국적 사고를 강화한다. 다시 말해서 파국화가 자기 충족적 사고(Self-Fulfilling Prophecy)와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파국화라는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결과와 자아를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앞서 서술한 대로 성공과 실패, 합격과 불합격은 인생이라는 하나의 선에서 작은 점일 뿐이며, 그 점이 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면접의 합격 여부는 그날의 수행에 대한 평가일 뿐 인생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수행의 결과를 자아가 아닌 단편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를 자아로 확장하지 않는 태도만으로도 파국화를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떠오르는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망한 것 같다.’는 추측이 ‘망했다.’는결론으로 곡해되는 순간, 사고는 현실을 앞지르기 시작하며 머릿속에서 다른 가능성은 모두 지워진다. 이 지점에서 사고를 잠시 멈추고 다른 가능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망한 것 같다.’는 가능성 외에 다른 가능성을 하나라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파국화는 힘을 잃는다.

 

버스에 앉아 면접 장면을 회상하던 청년은 아직 아무런 결과도 통보받지 않았다. 그가 붙잡고 있는 것은 실패의 사실이 아니라, 실패를 완성해 버린 상상이다. 파국화는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결말을 현재로 치환해 버린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며, 한 사람의 가치가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멈춰야 할 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를 삶 전체로 확장해 버리는 파국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이은정, 심민정, & 최현주. (2019). 구직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간 관계에서 속박감의 매개효과와      파국화 및 자기비난의 조절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31(4), 1165–1186.

2) Garnefski, N., & Kraaij, V. (2006). Relationships between cognitive emotion regulation strategies and depressive                    symptoms: A comparative study of five specific sample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 ferences, 40(8), 1659-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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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3-14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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