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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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cheaone1@naver.com)]


이미지 생성 : ChatGPT

약 2,300년 전, 이집트의 국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있었다. 방대한 양의 기하학 원리를 공부하다 지친 왕은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소?"라고 물었다. 그때 유클리드는 단호하게 한마디를 던진다.


"폐하,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통치라는 열망, 기하학이라는 고통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왕의 신분으로 굳이 유클리드의 엄격한 수업을 자처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단순히 칼로 땅을 차지한 정복자를 넘어, 세상의 질서를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다스리는 '완벽한 지배자'가 되고 싶어 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신도시를 설계하고, 당대 최대의 지식 창고인 도서관을 건립하며 제국의 기틀을 닦는 과정에서 그에게 기하학은 필수적인 도구였다.


하지만 그 목표, 즉 '하고 싶은 일(완벽한 통치)'로 가는 길은 '하기 싫은 일(기하학 공부)'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왕조차도 유클리드 앞에서 지루함과 괴로움을 호소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이라 할지라도, 성취를 위해 거쳐야 하는 인내의 과정에는 특혜가 없다는 점이다.


의지의 엔진, aMCC라는 ‘뇌 속 예산 부서’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 처음에는 누구나 의욕에 넘친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면 지루함이 엄습하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뇌의 철저한 생존 전략 때문이다.


우리 뇌 안에는 전측부 대상피질(aMCC, anterior Mid-Cingulate Cortex)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이 부위는 뇌의 전체적인 에너지를 분배하고 관리하는 ‘예산 담당 부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고강도 공부를 하는 행위는 뇌 입장에서 엄청난 예산(에너지)이 투입되는 고위험 사업이다.


이때 aMCC는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지금 이 일은 너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데, 굳이 이만큼의 에너지를 승인해야 하는가?”라며 끊임없이 제동을 건다. 우리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뇌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보내는 일종의 ‘예산 삭감’ 신호인 셈이다. 여기서 유혹에 넘어가 멈춰버리면 aMCC는 점차 위축되고, 나중에는 아주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예산을 승인하지 않는 ‘나약한 뇌’가 되고 만다.


고통이라는 이름의 성장통


흥미로운 점은 aMCC가 근육과 같아서 훈련을 통해 물리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앤드류 후버만 교수와 장동선 박사 등 뇌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정말 하기 싫은 순간, 즉 뇌가 예산을 깎으려 드는 찰나에 자신을 밀어붙여 실행을 이어가면 aMCC 부위의 뉴런들이 폭발적으로 활성화된다.


연구에 따르면, 국가대표급 운동선수나 80대의 나이에도 청년의 인지 능력을 유지하는 ‘슈퍼 에이저’들의 aMCC는 일반인보다 훨씬 두껍고 밀도가 높다. 그들이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매일 마주하는 귀찮음과 고통을 이겨내며 뇌의 예산 부서를 반복적으로 단련해왔을 뿐이다.


가수 장기하도 하고 싶었던 음악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인 '하루 8시간 드럼 연습'을 선택했다. 손에 병이 생길 만큼 자신을 몰아붙였던 그 고통의 시간은 사실 그의 뇌 속 aMCC를 ‘어떤 도전도 승인하는 강력한 부서’로 개조하는 과정이었다. 왕도가 없다는 말은 곧, 뇌의 신경 가소성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고통이라는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름길은 없다, 'Just do it'


우리는 흔히 열정이 생겨야 행동할 수 있다고 믿지만, 뇌과학적 진실은 그 반대다. 행동이 열정을 만든다. 우리가 하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행동을 지속할 때, 뇌에서는 ‘승자 효과(Winner Effect)’가 발생한다. 지루함과 의구심을 뚫고 작은 성취를 맛보는 순간, 뇌는 강력한 도파민을 분비하며 성공의 기억을 각인한다.


이 성공의 기억은 aMCC의 결재 라인을 강화한다. 한 번 고통을 이겨본 뇌는 다음번 시련 앞에서도 “그때도 해냈으니 이번에도 예산을 승인해주겠다”며 훨씬 더 수월하게 에너지를 내어준다. 결국 ‘참고 견디는 힘’ 자체가 뇌의 물리적 구조로 남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항상 즐거운 일만 찾으며 고통을 회피하는 삶은 뇌를 퇴화시킨다. 마찰력이 없는 삶에서는 aMCC가 활성화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루함, 어렵다는 느낌,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그 ‘기분 나쁜 감정’들이야말로 당신의 뇌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증거다.


유클리드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2,3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식과 성취, 그리고 단단한 정신력은 권력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시간을 투여하고, 귀찮음이라는 본능에 저항하며,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견딘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전유물이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은 곧 “인생의 성취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말과 같다.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그 지루함과 막막함은 실패의 징조가 아니다. 당신의 aMCC가 성장판을 열고 단단해지는 중이라는 신호다. 지름길을 찾으려는 미련을 버리고 그냥 실행하라. 당신이 기꺼이 지불하는 그 고통의 시간만큼, 당신의 뇌는 그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갈 불굴의 의지를 선물할 것이다. 왕도는 없지만, 묵묵히 걷는 이에게 뇌의 길은 반드시 열린다.




- 참고자료 - 

장동선의 궁금한 뇌.(2024).뇌과학자가 말하는 국대급 뇌의 비밀 | aMCC

장동선의 궁금한 뇌. (2026). 완벽해지려다 자꾸 미루는 당신을 위한 솔루션

KISTI의 과학향기.이광연.(2014).피라미드에 얽힌 이집트의 수학이야기! 작도와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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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3-14 16: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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