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
[한국심리학신문=김영은(kukuku07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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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감정은 대상을 더 선명하게 보는 상태처럼 느껴진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집중되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좋아함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이 보게 되기보다 특정한 방향으로만 보게 된다. 감정은 시야를 넓히기보다, 판단의 기준을 조용히 이동시킨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사람 앞에서, 이전에는 분명 이상하다고 느꼈던 행동이 어느 순간 설명 가능한 이유를 갖는다. 연락이 늦어도 “원래 그런 사람”이 되고, 무심한 말투는 “솔직한 성격”으로 바뀐다. 친구가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해도 우리는 그 말을 검토하기보다, 상대를 대신해 해명하는 쪽을 택한다. 사랑이나 짝사랑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잃는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분명 괜찮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땐 왜 몰랐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에서 후광 효과(Halo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한 가지 강한 긍정적 인상이 대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지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 커질수록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게 된다.
여기에 이상화(idealization)가 더해지면, 상대의 단점은 실제보다 축소되거나 ‘나만 이해할 수 있는 특성’으로 재구성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점점 더 주관적인 시선에 머물게 된다. 감정은 사실을 지우기보다, 해석의 방향을 바꾼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불편한 정보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이는 이미 형성된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인지적 경향을 의미한다. 닉커슨(Nickerson, 1998)은 이를 인간 사고에서 가장 보편적인 오류 중 하나로 설명한다. 우리는 상대를 좋아할 수 있는 근거만을 수집하며, 불편한 정보는 점차 흐릿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상대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심리일 가능성이 크다. 관계를 선택한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해석을 조정한다. 사랑은 때때로 타인을 바라보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과정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짝사랑과 연애에서도 인식의 왜곡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짝사랑에서는 정보가 부족한 만큼 상상이 개입되고, 상대는 실제보다 더 완벽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착시’에 가깝다.
반면 연애에서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인이 작동한다. 갈등이 발생해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한 요소를 감내하거나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왜곡이 이루어진다. 이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해석의 선택’에 가깝다. 형태는 다르지만, 두 경우 모두 감정이 판단의 방향을 이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관계가 끝난 뒤에야 문제였던 지점들이 선명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이 약해지거나 사라진 후에야 인식이 비교적 중립적인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사랑 속에서의 판단은 틀렸다기보다, 그 시점의 감정에 맞게 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조정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자신이 어디까지 감내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객관성을 잃는 순간은 극적이지 않다. 대개는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사랑이 객관성을 흐린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왜곡되지 않는 사랑은 어쩌면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머레이(Murray)와 동료들(1996)의 연구에 따르면, 연인을 긍정적으로 이상화하는 경향은 관계 만족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³. 사랑이 만들어내는 ‘긍정적 착시’는 단순한 오류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심리적 장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왜곡을 단순히 경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언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땐 왜 몰랐을까”라는 질문은 후회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다음 관계를 위한 통찰이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얼마나 설득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을 잃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관계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성숙한 사랑이란, 상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유지하면서도 그 시선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태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참고문
Nickerson, R. S. (1998). Confirmation bias: A ubiquitous phenomenon in many guise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2), 175–220.
Murray, S. L., Holmes, J. G., & Griffin, D. W. (1996). The benefits of positive illusions: Idealization and the construction of satisfaction in close relationship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0(1), 7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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