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지
[한국심리학신문=임언지(alice6472@naver.com)]
어느 날 아침,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포털 실시간 검색어가 한 아이돌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 열애 인정.” 나는 그를 만난 적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인지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혹은 반대로 “드디어!”라는 벅찬 감동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를 왜 이토록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걸까? 그리고 모르는 사람의 연애 소식이 왜 내 일처럼 다가오는 걸까?
심리학은 이 낯선 감정에 꽤 명확한 이름을 붙여두었다.

팬들이 연예인의 연애 소식에 그토록 강하게 반응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미 그들 사이에 일종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유사사회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고 부른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미디어 속 인물에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사당숲정신건강의학과 최강록 원장은 정신의학신문 기고에서 “팬들은 미디어를 매개로 연예인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실제로 아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듯한 친밀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브이로그, 리얼리티 프로그램, 그리고 위버스(Weverse)나 버블(Bubble) 같은 팬 전용 메시지 플랫폼의 확산은 이 감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준다.
매일 아침 연예인이 보내는 “잘 잤어요?”라는 한 줄 메시지는, 논리적으로는 수십만 명에게 동시에 전달된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실질적으로 쌍방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이 실제 관계보다 더 견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이 이 감정의 핵심이다.
유사사회관계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가 찾아온다. 바로 동일시(identification)*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의 감정과 경험에 자신을 겹쳐 놓기 시작한다.
정재민(2010)의 청소년 팬덤 현상 연구에 따르면 팬덤은 초기에 ‘나를 위한 그’의 단계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위한 나’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연예인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성공처럼 느껴지고, 그의 상실이 자신의 상실처럼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연애 소식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연애가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대리만족의 형태로 작동하며, 마치 내가 그 감정을 함께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그가 이별한다면 팬들은 실제로 이별을 겪은 것처럼 슬픔을 토로하기도 한다.
최강록 원장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성공하면 마치 내가 성공한 것 같은 대리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오르는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연예인의 연애 소식이 단순한 가십거리를 넘어 개인적인 감정 사건으로 처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동일시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유독 ‘연애’ 소식에 귀를 기울일까? 이 질문에 진화심리학은 흥미로운 답을 내놓는다.
인간은 오랜 진화 역사 동안 소규모 집단 안에서 살아왔다. 그 집단 안에서 누가 누구와 짝을 짓는지, 높은 지위의 구성원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생존과 직결된 정보였다. 타인의 사회적 관계를 추적하고 공유하는 행위, 즉 ‘가십’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사회적 생존을 위한 정보망이었던 셈이다.
현대 사회에서 연예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존재에 해당한다. 우리의 뇌는 이들의 연애 소식을 ‘높은 지위의 구성원에 관한 중요한 사회적 정보’로 자동 처리한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연예인의 열애설에 즉각 반응하는 것은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신경학적 반응일 수 있다.
국제신문 보도에서도 전문가들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뇌에서 도파민을 자극하고 타인의 연애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심리들이 결합되면 팬덤 문화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이 나타난다. 바로 연애 소식에 대한 배신감이다.
심재웅과 황재원(2016)의 연구는 연예인과의 정서적 유대가 심화될수록 연예인의 일상적 결정에 대한 심리적 민감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한 연구는 K팝 아이돌의 연애가 팬덤에게 ‘위기’로 받아들여지는 구조적 이유를 분석하며 이를 단순한 질투가 아닌 ‘계약 감정’의 파기로 해석했다.
아이돌 산업은 오랫동안 팬들에게 친밀감과 소통, 그리고 일종의 유사연애 감정을 제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이의 암묵적 약속’을 상정하게 된다. 연예인이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 그 약속이 깨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반응은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의 감정은 언제나 논리보다 먼저 작동한다. 유사사회관계 위에 쌓인 동일시와 대리만족, 그리고 소유욕이 충돌하는 순간 팬들은 실제 이별을 겪은 것처럼 반응하게 된다.
연예인의 연애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면, 혹은 알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상한 반응이 아니다. 유사사회관계를 형성하고,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사회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발전시켜 온 사회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오상은(2025)의 연구는 팬 활동이 특정 연령대의 일시적인 문화가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갖는 심리적 활동임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감정이 ‘배신감’이나 ‘혐오’로 표출될 때는 한 번쯤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실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미디어가 만들어 낸 친밀감의 반사일까.
이 질문 하나가 건강한 팬덤과 소모적인 집착 사이를 가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참고 문헌
정재민. (2010). 청소년 팬덤 현상에 대한 근거이론적 접근.
심재웅, 황재원. (2016). 청소년의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섭식장애. 한국언론학보.
오상은. (2025). 삶의 과정에서 팬 활동의 동기와 의미.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케이팝 아이돌의 연애는 왜 ‘위기’인가? — ‘유사 연애’를 넘어 ‘계약 연애’까지. DBpia.
최강록. (2024). 우리가 덕질을 하는 이유, 팬덤의 심리. 정신의학신문.
조선일보. (2024.03.09). 사랑한 죄? 심리학으로 분석한 아이돌 연애의 법칙.
국제신문. (2024.05.03). 과몰입, 도파민 유발…연애예능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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