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최근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 여러 논문을 훑어보는 대신 하나를 읽더라도 제대로 읽자는 다짐을 하며 종이로 논문을 출력해서 읽어보았다. 태블릿 PC를 상시 휴대하게 된 이후로 논문을 종이로 출력해 읽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으나, 놀랍게도 스크린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단순히 전자기기의 알림에 방해받지 않기 때문일까? 필자의 아이패드는 언제나 방해 금지 모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이가 주는 몰입감은 확연히 달랐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적인 느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심리학적 연구 데이터로도 뒷받침된다.
전자기기로 텍스트를 읽는 것이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 효율 측면에서는 여전히 '스크린 열등성(Screen Inferiority)'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08년부터 2018년 사이 발표된 33편의 연구를 분석한 메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스크린으로 글을 읽는 것은 종이로 읽는 것에 비해 전반적인 독해 성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소설 같은 내러티브 텍스트보다 논문이나 교과서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설명적 텍스트에서 더욱 뚜렷하게 관찰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메타인지'의 차이에도 있다. 연구 결과, 종이와 스크린 사이의 읽기 시간 자체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으나, 종이로 읽을 때 학습자가 자신의 이해도를 판단하는 '메타인지적 정확도'가 더 높았다. 즉, 스크린으로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실제보다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종이 독자들은 자신의 학습 상태를 더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러한 디지털 전환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인공지능(AI)이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최적의 학습 경로를 제공한다는 기치 아래, 2025년 수학, 영어, 정보 교과를 중심으로 AI 디지털교과서(AIDT)가 시범 도입되었다. 그러나 2025년 6월 출범한 새 정부가 이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면서 의무 도입 대신 학교 자율 선택으로 정책이 전환되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실제 도입 후 중등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질적 분석 연구를 살펴보면 현장의 우려는 더욱 구체적이다. 교사들은 AIDT가 개별화된 맞춤형 학습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는 기대를 표했으나, 실제 활용 면에서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특히 학생들의 단편적인 지식 습득과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스스로 깊이 사고하지 않는 학습 태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수업 중 인터넷 장애나 기기 조작으로 인한 시간 낭비, 학생들의 주의 분산에 따른 통제의 어려움 등은 AIDT가 교육적 도구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나타났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종이에서 더 큰 집중력을 얻는 이유는 단순히 알림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자기기는 '언제든 버튼 하나로 다른 활동에 접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만으로도 미세한 정신적 분산을 일으킨다. 스마트 기기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에 영향을 받는 필자의 경험처럼, 디지털 환경은 뇌로 하여금 멀티태스킹을 준비하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반면 종이는 그 자체로 물리적인 한계를 지닌 매체다. 종이를 인쇄하고 보관하는 일은 번거롭고 무겁지만, 그 '물성'은 오히려 독자에게 현재 읽고 있는 텍스트에만 고정되도록 돕는 고정 장치가 된다. 텍스트를 손으로 짚어가며 읽거나 여백에 필기하는 행위는 뇌에 공간적인 정보를 함께 제공하여 기억의 효율을 높인다.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태블릿이 주는 편리함도 가치가 있지만, 때로는 종이가 가진 '제한적 환경'이 주는 몰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디지털 교육 혁신이 진행되는 지금,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은 도구의 첨단화보다 '깊이 생각하는 능력'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이지연·김현영 (2025), "AI 디지털교과서의 학교현장 도입 후 중등교사들의 인식에 관한 질적 분석", 컴퓨터교육학회 논문지
2) Virginia Clinton (2019), "Reading from paper compared to screen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ournal of Research in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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