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심리학신문=박성용 ]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최근 사회는 유례없이 많은 ‘설명’과 ‘분석’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 전망을 말하는 전문가, 사회 문제를 분석하는 논평가,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분석가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과 조언을 제시한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과거에는 제한된 전문가 집단만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분석하고 설명하는 위치에 설 수 있다.
문제는 설명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설명이 현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판단이 틀렸을 때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이 직접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제 정책, 투자 조언, 기업 경영 전략 등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종종 다른 사람에게 전가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단순히 사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심리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직접적인 손실로 이어지지 않을 때 더 쉽게 위험한 판단을 내리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약해질수록 결정의 신중함 또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현대 사회의 중요한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왜 우리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 판단을 반복하게 되는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판단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존재다. 특히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때 직접적인 손실을 경험하면 그 경험은 강한 학습 효과를 남긴다. 반대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더라도 그 결과가 타인에게 전가된다면, 그 판단은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리스크를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말은 이러한 인간 행동의 구조를 정확히 드러낸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틀렸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접적인 결과를 경험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패와 손실은 인간의 판단 체계를 강하게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 경험을 통해 형성된 판단은 단순한 이론이나 분석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이나 논리적 사고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의 복잡한 위험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확률과 변동성,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체감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판단이 현실적인지 여부를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그 판단이 실제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조언을 왜하는데 대체
현대 사회에서는 조언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투자 조언, 경영 컨설팅, 정책 자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조언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잘못된 조언에 상응하는 처벌이 없다면, 조언은 쉽게 무책임해질 수 있다. 조언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손실이 없지만 조언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큰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특정 행동을 권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행동이 성공하면 조언자는 자신의 통찰력을 강조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실제 손실은 다른 사람이 감수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조언의 질이 자연스럽게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등장한다. 당신에게는 손실이지만 조언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손실이 없는 선택을 권한다면 그 조언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 심리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적인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때 타인에게 더 과감한 선택을 권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판단이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돌아보면, 타인이 먼저 “당신에게 좋은 기회”라며 제안한 일들이 항상 당사자에게 유리한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그 제안이 상대방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구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조언을 받을 때는 그 조언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동과 말
사람들은 종종 말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을 구분한다. 실제로 현실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사람과 뒤에서 분석만 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판단한다.
앞에서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곧바로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은 자연스럽게 신중해진다. 반면 직접적인 결과를 감수하지 않는 위치에 있을 경우 판단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질 수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핵심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을 때 사고가 둔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위험을 실제로 감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판단의 긴장감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말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감수하지만, 행동 없이 말만 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생존의 기준
시간은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자연스럽게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오랜 시간 살아남은 것들은 그 자체로 일정한 안정성을 증명한다.
사상이나 제도, 기술, 제품, 심지어 인간의 행동 방식까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시험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취약한 것들은 쉽게 붕괴한다. 변동성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구조는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것들은 여러 번의 위기와 변화를 통과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어떤 아이디어나 시스템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는지는 그 자체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시간은 이론보다 훨씬 강력한 검증 장치이기 때문이다.
파멸을 피하는 선택
인간은 종종 높은 보상을 기대하며 위험한 전략을 선택한다. 특히 단기간의 이익이 크게 보일 때 이러한 유혹은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어떤 전략이 반복될수록 결국 파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전략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원칙이 하나 등장한다. 파멸을 유발할 수 있는 전략이라면 아무리 이익이 커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파멸은 단순한 변화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 번 발생하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행동을 반복할수록 결국 기대수명은 줄어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란 반드시 가장 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한 전략일 수 있다.
책임이 만드는 균형
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판단과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어떤 결정이든 그 결정에 따른 결과를 직접 감수하는 구조가 있을 때 사람들은 훨씬 신중하게 행동한다.
반대로 판단과 책임이 분리될 때 시스템은 쉽게 부패한다. 위험은 타인에게 전가되고, 잘못된 결정은 반복된다.
그래서 어떤 조언이나 판단을 접했을 때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해 실제로 무엇을 감수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 사회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문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결국 말과 행동, 판단과 책임이 연결될 때 비로소 현실에 기반한 결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 이건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9.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Antifragile)』, 안세민 옮김, 와이즈베리, 2013.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2.
리처드 탈러,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 김태훈 옮김, 리더스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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