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채린
[한국심리학신문=백채린(qorcofs1028@naver.com) ]
드라마 '레이디 두아' 속 사라 킴 /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의 중심에는 하나의 인물이 있다. 목가희, 김은재, 그리고 사라 킴. 이름도, 직업도, 삶도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한 명의 인물이다. 이 캐릭터는 백화점 판매원, 유흥업소 직원을 거쳐 명품 브랜드 지사장, 끝으로는 범죄를 저지른 무명녀로까지, 존재 자체가 하나의 미스터리가 되며 범죄 서사의 장치를 넘어 현대인이 욕망하는 이미지와 정체성에 대한 심리적 질문을 던진다.
여러 얼굴을 가진 인간: 멀티 페르소나(Persona)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에겐 수천 개의 페르소나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여러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을 착용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이 정신의 겉면으로 발현돼 내면의 욕구를 채워나간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착용하고 행동하지만, 이는 모두 한 사람의 것이다.
사라 킴의 경우 그녀가 가진 가면은 각각의 다른 삶의 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기 이상화(Idealized self)를 통해 ‘되고 싶은 나’를 형상화하고, 이를 향해 끊임없이 행동하고 움직인다. 그녀가 명품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욕망은 이러한 이상적 자아 추구의 극단적인 형태다. 본래의 자신을 감추고 사라킴으로서 부두아를 화제의 명품 반열에 올림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병리적인 분열이 아니라, 이상적인 내가 되기 위해 마치 인생에서 리셋버튼을 누르듯이 다시 시작하고, 되고 싶었던 새로운 사람, 명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단순히 명품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명품에 ‘어울리는’ 사람이 고급 취향을 향유하는 상류층 계급을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가 만든 욕망: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
취향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 즉 개인 외부의 사회구조나 조건 속에서 개인의 행동이 내면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삶을 이루는 다양한 삶의 요소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전제로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목가희가 명품 가방을 꿈꾸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백화점 명품 매장의 판매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세계를 가까이서 접했고 그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그녀의 취향이 보편화된 사회에 은폐된 특수한 사회경제적 조건 및 환경으로 획득한 성향이라는 것이다. 고급으로 평가받는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 진정으로 명품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접하는 환경에서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판매원 신세였던 그녀로서는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과 끊임없는 비교가 작동하며 이상적인 자아정체성을 욕망하는 동시에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증대한다. 계급 상승의 욕심과 하류층 팔자에 대한 혐오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이 이상적 자아에는 명품을 향유하는 상류층에 대한 동경이 내재하고 있다. 평범한 판매원 목가희에서 명품브랜드 지사장 사라 킴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마치 스스로를 재설계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품을 소비하는 이유: 상징적 소비(Symbolic Consumption)
명품이 소비되는 이유는 단순히 품질 및 기능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것이 이미지로서 상징하는 것이 강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부두아 가방이 신흥 명품으로서 큰 인기를 끌자, 사람들은 사라 킴이 국내 짝퉁 시장에서 제작한 가방을 영국 왕실 사용 브랜드로 둔갑시키고, 의도적으로 짝퉁 가방을 푸는지도 모르고 구매한다. 짝퉁 가방이 동대문 시장에 판을 치는 이유 역시 그렇다. 가짜가 만들어질수록 진품의 가치가 높아지고, 사람들은 더욱 진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명품의 사회적 이미지를 구매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표현한다. 이는 소비자가 물건의 실용적 가치보다 그 물건이 상징하는 이미지 및 사회적 의미를 소비하는 상징적 소비(Symbolic Consumption)다. Assael(1984)에 따르면 사람들은 내적 욕망과 환상에 나타나는 감정적 요인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한다. 소비자가 상징적 구매행동을 통해 품의 물리적 기능, 실용적 가치보다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사회적 지위와 같은 상징적 가치를 중시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명품 소비는 결국 상징성이 부여된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권력, 원하는 정체성 등의 이미지와 같은 유무형의 자산을 나타내고 연출하는 행위인 셈이다.
사라 킴이 원했던 것 역시도 명품 자체라는 물질적 욕망이 아니라 명품에 어울리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그 이미지였다.
가짜가 진짜가 된 순간
사람들은 타인을 평가할 때 실체보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먼저 믿게 된다. 후광 효과(Halo Effect)를 통해 긍정적인 특성으로 보이는 명품, 외모,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해 상대를 더 신뢰하고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사라 킴이 만들어낸 ‘상류층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드라마는 단순히 범죄 서사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짜가 되고 싶었던 사람’의 심리를 들추며 진짜란 무엇인지, 그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사회에 한 질문을 던지며 주인공을 둘러싼 사회의 구조적 심리 역시 조망한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SNS에서 타인의 삶을 소비하고, 더 나은 삶을 연출하려 애쓰며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그 욕망이 현실을 바꾸는 동력이 될 수도 있고, 정체성을 조작하는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 더 나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하홍규. (2022). 취향, 계급, 구별짓기, 그리고 혐오: 혐오 사회학을 위하여. 사회와이론, 199-230. 10.17209/st.2022.03.41.199
2) 김미예, 김정구, 한정수, 전미나, 정우영. (2016). 경제적 무력감이 상징소비에 미치는 영향. 소비자학연구, 27(6), 25-46.
3) 김정란, 유태순. (2008). 패션제품의 상징적 소비성향에 따른 브랜드 애착과 브랜드 충성도와의 관계. 한국의류산업학회지, 10(4), 499-505.
4) Assael, H. (1984) Consumer Behavior and Marketing Action. (2nd ed.). Boston Massachusetts: Kent Publishing Company.
5) 김양하. (2005). 상징소비의 문화·사회적 의미 분석: 상징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사회학적, 개인적, 사회적 요인의 다차원적 분석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6) 이호배. (1989). 상징적 소비자행동에 관한 탐색적 연구. 경영연구, 12, 209-245.
7) 소희현. (2023). ‘멀티 페르소나’ 관점에서의 인물 접근방식 연구 - : 주자나 페란초바作 <베이비 붐> 레사나役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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