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미
[한국심리학신문=박찬미(pcm4329@naver.com)]

보이스피싱 피해 뉴스가 나올 때마다 댓글창에는 어김없이 이런 말들이 달린다. “어떻게 그걸 믿어?” “요즘 세상에 그것도 모르냐?” 그런데 실제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고학력자이고, 심지어 현직 경찰관이나 금융 전문가조차 당한 적이 있다. 이건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보이스피싱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정밀하게 파고드는, 교묘한 심리 조작 범죄다.
첫 번째 무기: 권위 효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거의 항상 ‘권위 있는 목소리’로 시작한다. “검찰청 수사관입니다.” “금융감독원에서 연락드립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입니다.” 이런 말에 많은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긴장하거나 자연스럽게 대응하게 된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저서 《영향력》에서 권위를 인간의 복종 본능 중 하나로 설명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선생님, 의사, 경찰 등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따르도록 배워왔다. 이 구조 덕분에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지만, 동시에 범죄자들에게는 아주 쉽게 악용할 수 있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공식적인 직함’을 내세우는 순간, 뇌의 비판적 사고 기능은 어느새 일부 작동을 멈춰버린다.
두 번째 무기: 공포와 긴박감 — 편도체 하이재킹
권위 있는 말로 분위기를 잡은 뒤, 조직은 곧바로 공포를 심어준다. “지금 당신 명의로 대포통장이 개설되어 범죄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시 조치하지 않으면 오늘 중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됩니다.”
이 순간 실제로 뇌에서는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공포 자극이 닿으면 뇌의 편도체가 활발해지고, 전전두엽의 기능은 억제된다. 전전두엽은 이성적 판단, 충동 억제, 상황 분석을 맡는 부분이다. 쉽게 말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는 사람의 행동이 ‘생각’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에 끌리게 된다.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편도체 하이재킹’이라고 부른다. 범죄 조직은 바로 이 심리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다. 피해자가 침착하게 판단하는 여유를 아예 주지 않으려고,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킨다.
세 번째 무기: 고립과 통제 — 컬트 조직과 같은 구조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면 수사에 방해가 됩니다. 절대 말하지 마세요.”
이건 단순한 안내가 아니다.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다. 불안한 상황일수록 사람은 신뢰하는 주변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바로 이 본능을 차단하는 것이 조작의 핵심이다. 이때부터 피해자는 범죄 조직이 짜놓은 ‘닫힌 세계’에 갇히게 된다. 이제 조직원만이 소통의 유일한 상대가 되고, 그들의 말이 피해자의 현실 전체가 되어버린다. 이런 방식은 종교적 컬트 집단이 신도를 세뇌하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네 번째 무기: 일관성의 덫 — 발을 한쪽 걸치게 만들기
보이스피싱 조직은 처음부터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신분 확인을 위해 계좌번호만 알려주세요”처럼 사소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부탁부터 시작한다. 이런 작은 요구를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상대는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되고, 우리는 모르게 그 흐름에 끌려가게 된다.
이런 수법을 심리학에서는 일명 ‘발 들여놓기’ 기법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자신이 이전에 한 행동과 계속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싶어 한다. 한 번 요청을 들어줬다면, 다음 요구는 웬만해선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협조했는데, 여기서 멈추면 더 수상해 보일 수도 있잖아?” 이런 생각이 피해자를 스스로 덫에 빠뜨리게 만든다.
우리가 바꿔야 할 시선
보이스피싱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당하는 범죄’가 아니다. 이는 누구나 가진 심리적 특성, 즉 권위에 순응하고 두려움에 휩쓸리며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뇌의 작용을 노린 것이다. 피해자를 비웃는 사회는 두 가지를 잃는다. 피해자가 망설임 끝에 용기 내 신고할 기회, 그리고 범죄의 구조에 대한 사회 전체의 자각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피해자를 비난하기보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면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피해자를 향한 공감의 첫걸음이자, 동시에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든든한 무기다.
참고문헌
1)Ahmed, A. A., Hebbar, S., & Kumar, V. V. (2025, March 19). Influence of Students’ Personality and Psychosocial Well-being on Suicidal behaviour and Amygdala Hijacking: A study among students in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SDMIMD Journal of Management. Informatics Publishing Limited. https://doi.org/10.18311/sdmimd/2025/48904
2)김민정, 김은미. (2021). 보이스피싱 피해 경험 및 영향요인 분석. 소비자문제연구, 52(1), 52-71.
3)윤해성, 곽대경. (2009). 보이스피싱의 예방과 대책마련을 위한 연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4)임채호, 김지영, 최진혁. (2009). 심리적 보안관점에서의 사이버범죄 프로파일링. 정보보호학회논문지, 19(4), 115-124.
5)이수연, 이승환. (2020). 우울증 환자의 뇌 구조적 변화와 신경회로 분석. 생물정신의학, 27(1), 45-53.
6)조수현, 이유우 and 최명길. (2016). 전기 통신 금융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 : 전화 금융사기를 중심으로. 한국IT서비스학회지, 15(2), 35-49.
7)신성원. (2022). 보이스피싱의 실태 및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치안행정논집, 19(4), 165-185.
8)오세연 and 송혜진. (2023). 심리적 기재를 기반으로 한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 특성 및 진행과정에 관한 연구. 한국재난정보학회 논문집, 19(3), 510-518.
9)황석진. (2021). 전기통신금융사기 근절을 위한 고찰 - 보이스 피싱을 중심으로 -. 경찰학연구, 21(1), 91-123.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