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초기의 기록: 완벽주의 넘어 나를 사랑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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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초기의 기록: 완벽주의 넘어 나를 사랑하는 연습 - 시험 불안,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 완벽한 내담자가 되고 싶었다 - 상담 날 늦잠을 잤을 때
  • 기사등록 2026-04-13 10: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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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안수민 (12sumin12@korea.ac.kr)]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한다. 


"넌 참 뭐든지 잘하는 것 같아."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꼼꼼해?" 

"네가 있으면 뭐든지 잘 된다."


난 그 평가가 좋다. 아니, 잃고 싶지 않다.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매주 일요일에 일주일 계획을 세우고 매일 아침 계획표를 점검한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하면 밤잠을 설쳤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는 늘 유능하고 완벽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내가 무너지는 것 같고 나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나를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면의 나는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조금만 더 당기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태. 그것이 내가 "완벽주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행하는 고문이었다.


끊임없는 자책과 원망 속에서 나는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조금이라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었고 작은 실수쯤은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소한 실수로 밤잠을 설치는 일이 줄었으면 했다. 더 이상 나를 채찍질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는 상담사 앞에서도 완벽한 내담자이고 싶었다. 힘든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가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미리 생각해 뒀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이상하게 볼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상담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나를 기계로 여기고 있었다


첫 시간, 무엇이 힘드냐는 질문에 나는 시험 불안으로 왔다고 했다. 시험 5주 전부터 불안에 잠을 못 이루고 2주 전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나를 보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성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대학생인데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의 시험 불안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시험 불안이 왜 생기는지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파악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상담실의 공기는 늘 따뜻했다. 상담사는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수민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서류 작업도 곧잘 하고 발표도 자신 있어요.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 편이고 지금 하고 있는 대외활동도 꽤 많아요. 한마디로... 능력 있는 편이에요." 


이어지는 질문은 조금 의외였다. "수민 님이 좋아하는 건 뭐죠?"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밤을 새워 말할 수 있었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내뱉은 말은 "딱히 없어요... 음, 펭귄은 좀 좋아하는 것 같아요"가 전부였다. 


"좋아하는 건 별로 없는데 자신에 대한 설명은 전부 '수행'과 관련된 것들이네요." 


그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지금껏 나라는 존재를 설명할 때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설레는지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생산적인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만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날 상담실을 나오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완벽주의"의 본질을. 나는 나 자신을 무언가를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찾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쉼 없이 돌아가야 하는 기계로 여기고 있었다. 성과가 없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폐기해야 할 기계처럼 나 자신을 대했다.


내가 스스로를 멘탈 약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과부하가 걸려 멈춰야 할 때도 나는 쉼 없이 돌아가라고 다그쳤고 나를 걱정하는 대신 "왜 이것밖에 못 버티냐"며 화를 냈다. 수행을 제외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이 나를 완벽주의에 가두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완벽주의의 본질을 깨닫고 나서 3회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상담 시간에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고 늦게라도 상담실 문을 열었다. 상담사 앞에 앉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제가 너무 한심해요. 알람 듣자마자 일어나면 되는데 바보 같아요."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저는 오히려 늦었을 때 전화를 주고 늦게라도 와줘서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상담사는 덧붙였다. 내가 늦잠을 자지 않으려고 알람시계를 멀리 두고 수면 앱을 찾고 일어난 날을 체크하며 꾸준히 노력해온 그 과정이 '기특하다'고.


내가 나를 한심하다고 여길 때 타인은 나의 노력을 보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상담에 늦어도 상담은 잘 진행됐고 상담사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3회기의 상담을 마쳤고 이제 7회기가 남아 있다. 3회기의 숙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인지하기"다. 일상 속에서 어렵지만 한 걸음씩 실천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탈 때만큼은 할 일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피아노를 칠 때 행복하고 지금이라도 다시 배우고 싶다. 

침대에 누워서 무한도전을 보고 싶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내가 보였다.


한국심리학신문에 이 글을 투고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누군가는 고작 3번의 상담을 받고 무엇을 논하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엔 "적어도 10회기는 받아야 제대로 된 깨달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3회기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생각과 느낌은 내 삶을 돌아보게 했고 앞으로의 상담을 기대하게 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다. 앞으로도 상담은 계속될 것이고 그 과정은 꾸준히 기록될 것이다.


좀 더 나를 사랑할 때까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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