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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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조찬희(byliner_cho@naver.com)]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환승역이나 출구에서 사람에 막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길을 막고 일렬로 통해하는 무리나 좁은 길에서 휴대폰을 보며 느긋하게 걸어가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딱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는 유독 감정이 거칠어지곤 한다.
이러한 일상에서의 분노는 단순히 그 사람의 성격이 나쁘거나 급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당연한 심리 반응일 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좌절-공격 가설로 설명한다.
좌절 공격 가설(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은 좌절은 공격 행동을 증가시키며, 공격 행동은 좌절로부터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모든 좌절이 공격 행동을 유발하거나 모든 공격 행동이 좌절로부터 기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 가설은 많은 심리전문가들에 의해 비중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때, 그 과정에서 방해를 받게되면 ‘좌절’을 경험한다. 또한 이 좌절은 자연스럽게 분노 혹은 욕과 같은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이 방해로 인해 학교나 회사에 지각하게 되는 상황에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의 진행이 막혔다는 인식 자체로 감정 반응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빠르게 이동하고 싶다는 목적이 느리게 걷는 앞사람에 의해 막히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순간의 지연이 아니라 나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려는 행동으로 인식한다. 이때 발생한 좌절은 굉장히 짧은 순간에 형성되지만, 감정은 더 빠르게 반응하여 튀어 나온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출퇴근길의 흔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짜증과 불편함이 먼저 튀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지 처리 방식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조절·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의해 통제된다고 생각될 때 더 큰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앞으로 걸어 가고 있는 나의 속도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통제될 때 스트레스와 상실감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앞을 막은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감각 때문에 평소보다 더 쉽게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지하철 뿐만 아니라 일상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횡단보도 신호를 오래 기다리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바로 닫히지 않고 있을 때, 키오스크에서 앞 사람이 메뉴를 너무 오래 고르고 있을 때도 모두 이 좌절-공격 가설에 의해 분노의 감정이 발생한다. 이 예시 상황 모두 내가 생각했던 흐름, 즉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던 흐름이 예상치 못한 것에 의해 멈추게 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연 상황에서의 분노나 불편함의 크기가 실제 지연 시간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5초가 지연되어도 화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5분의 지연에는 비교적 담담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감정이 객관적은 지연 시간보다 주관적인 인식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의 많은 지하철 이용객으로 인한 열차 지연보다 지하철 계단을 느리게 올라가는 사람처럼 구체적인 대상이 우리 눈앞에 보일 때, 우리는 자신의 목표를 방해하는 요소, 즉 그 원인을 외부로 명확하게 돌릴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를 실제보다 과장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단순하게 여유 있게 걷고 있거나 너무나도 힘든 하루를 보내 기진맥진한 채 퇴근하는 사람을 보며 ‘나의 길을 막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 상황은 중립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혹시 저 사람이 나의 통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느리게 걷는다고 예민하게 해석하게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짜증은,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끊긴 흐름으로부터 발생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리고 이 반응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화를 내는 사람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 ‘인내심이 없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사고의 흐름일 뿐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흐름이 멈추는 순간 사람은 자연스럽게 좌절을 느끼고 그에 따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다시 일상을 돌아보면, 우리가 마주하게 된 짜증은 ‘화가 나서’가 아니라 ‘멈춰졌기 때문에’ 생겨 난 것일지도 모른다. 지하철 환승 통로, 횡단보도 신화 앞, 그리고 사소한 기다림 모두 이 흐름 속에서 감정이 표출된다.
이 관점에서 우리가 분노를 바라본다면 분노란 누군가를 향한 공격적인 ‘감정’이라기 보다는 흐름이 끊어지게 된 순간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멈춰진 것에 대해 반응한 것일 뿐이다.
[참고문헌]
1) Dollard, J., Doob, L. W., Miller, N. E., Mowrer, O. H., & Sears, R. R. (1939). Frustration and aggression. Yale University Press.
2) Berkowitz, L. (1989). 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 Examination and reformul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06(1), 59–73. https://doi.org/10.1037/0033-2909.10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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