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채린
[한국심리학신문=백채린 ]
Pixabay StockSnap
우리는 때때로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조차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것이 실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히 비도덕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그 감각은 더욱 고도화되고 또렷해진다. 나아가 내가 떠올린 생각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묘한 상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방금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을 황급히 지워버리려 하거나, 들키지도 않았고 아무 일ㅇ도 없었음에도 괜히 주변을 살피게 되는 순간이다. 마치 세상 곳곳에 보이지 않는, 더불어 내 머릿속 어딘가에 CCTV가 설치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 감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러한 감각은 ‘자기 검열(self-censorship)’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자기 검열은 외부의 직접적인 통제가 없더라도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 기준을 내면화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사고와 표현을 제한하는 심리적 과정이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이건 하면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은 나쁘다’와 같은 기준을 학습하고, 그 기준을 우리 내면의 목소리, 감시자로서 받아들인다. 그 결과 실제 타인의 존재 대신 ‘내 안에 자리 잡은 타인의 시선’이 작동하여 우리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내면화된 타자(internalized other)’ 혹은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사회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가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이 사회의 시선과 기대를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평가하고 통제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개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한, 사회의 반응을 완전히 배제한 채 행동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느끼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감각은 실제 타인의 존재라기보다 사회 전체의 시선을 내면화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에밀 뒤르케임(Émile Durkheim)이 말한 외부에서 개인의 행위를 강제하는 일반화된 타자들의 집합적 힘이 내면화 가정을 통해 개인에게 사회적 규범을 인식시켜 작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감시 현상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초자아(superego)’의 작용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초자아는 도덕과 규범을 담당하는 심리 구조로, 개인의 충동을 억제하고 죄책감과 죄의식을 유발한다. 초자아는 단순히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 평가하고 통제한다. 비도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회적 규범을 학습한 우리는 이 생각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따라붙으며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 감각은 특히 타인의 시선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사람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난다. 흔히 말하는 ‘눈치를 본다’는 성향은 단순히 상황과 타인을 읽고 신경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까지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경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개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평가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수정한다. 타인의 존재를 끊임없이 고려하며, 자신의 행위 또는 생각이 옳은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다.
동시에 이는 일종의 양심의 작용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준을 내면화한 결과, 우리는 타인이 없더라도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이 양심이 생각의 영역까지 확장되며 사회의 도덕적 감각이 자기 억압과 불안으로 변질돼 스스로를 검열하고 가책을 느낀다.
물론 사람은 실제보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스포트라이트 효과’다. 비록 주로 외모나 행동과 관련된 상황에서 나타나지만, 이 경향이 확장되면 생각의 영역 깊숙이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생각조차 누군가에게 포착될 것처럼 느끼며 스스로를 더 강하게 통제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심리가 내면으로 확장돼 계속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사고-행동 융합(Thought-action fusion, 이하 TAF)’이라는 인지 왜곡이 더해진다. 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실제 행동과 유사한 도덕적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 경향이다.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을 행하는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해치는 상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로 해를 가한 것처럼 느끼는 경우다. 이러한 인식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 위험하게 인식하고, 강한 억제를 유도한다. 가능성(probability or likelihood) TAF로 보자면 어떤 사고가 특정한 사건을 야기한다거나,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을 강화시킨다. 그렇게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에 침투하고 생각을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이 확장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을 억누르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생각을 더 강화시키기도 한다. 이는 사고 억제 역설(ironic process theory)로 설명된다. “이 생각을 하면 안 돼”라고 스스로 되뇌이면, 뇌는 오히려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해당 생각은 더 자주 의식 위로 떠오르게 된다. 마치 “하얀 곰을 생각하지 마라”는 지시가 오히려 하얀 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과 같다. ‘내 머릿속에서 나가!’라고 외치는 순간 이미 우리의 머릿속엔 그 생각과 행동이 명백히 내재된 것이다.
결국 ‘머릿속 CCTV’는 실제 감시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도덕,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개인의 양심을 기반으로 한 심리적 장치가 만들어낸 감각이다. 이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일정 수준의 자기검열과 죄책감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도해지면 문제가 생기듯이, 이 감시가 과도해지는 것은 분명한 악재를 유발한다. 생각 자체를 통제하려 하거나, 떠오른 생각만으로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평가하고 처벌한다는 것은 개인이 일상 속에서 끊임없는 불안과 긴장 속에 놓이게 된다는 것과 같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는 인식이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이 곧 그것을 실행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생각하는 존재이고, 무엇이든 다양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이를 단순한 망상장애로만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시받고 있다고 믿도록 학습된 존재이다. 머릿속 CCTV의 전원을 종료하고, 생각과 세상을 분리해 바라볼 수 있다면 자유와 여유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이홍균. (2010). 사회 압력으로서 일반화된 타자들의 사회 기대. 사회와 이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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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상원, 이경욱, 최미나 and 이승재. (2019). 사고-행동 융합과 인지적 융합의 개념적 이해 : 강박증을 중심으로. 대한불안의학회지, 15(1),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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