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형진
[한국심리학신문=함형진(zzxxiop123@naver.com)]
출처: Pixabay / 성경 속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나누는 장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미덕
필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필자 자신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선(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내 삶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 타의 모범이 되는 삶, 선한 모습으로 가득 찬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 등 좋은 사람을 규정할 때 여러 잣대가 사용되곤 한다. 어렸던 필자는 그 모든 잣대 속에서 완벽해지고자 했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겨내기 위하여 바쁘게 삶을 일구어 갔는데, 정작 그 끝에 혼자만 달려온 길임을 깨우쳤다. 앞만 보고 달려온 과정에서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시작한 길에 좋은 사람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반추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자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여유가 필요하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다음과 같던 고민을 하던 필자의 마음을 울린 심리학 실험이 있다. Princeton 대학교에서 “FROM JERUSALEM TO JERICHO(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친사회적 도움을 다룬 사회심리학 실험이었다. 해당 실험에서 연구자는 Princeton 신학대학교 재학생을 모집하여 성경의 누가복음 10장 29-37절 말씀에 관하여 준비하라고 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는 법률 혹은 비유를 통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해당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장 29~37절)" 해당 구절의 메시지는 범용적으로 우리 삶의 반경을 이웃으로 확장하여 서로를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실험을 설계한 연구자들은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종교적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공식적인 일정으로 바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 시선을 두었다. 이에 연구 가설로 ‘사람들은 도움을 주는 상황에 처했을 때, 만약 그들이 서두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서두르지 않은 사람보다 도움을 줄 가능성이 더 낮을 것이다’라고 예측하여 이를 관찰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설교 말씀을 준비하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연구자들은 본격적인 실험을 진행한다. 바로 그들에게 해당 구절과 유사한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모든 참가자는 설교하러 가는 길에 문간에 기대어서 기침하며 신음하는 피해자를 마주한다. 만약 참가자가 멈춰서 도와주고자 한다면, 피해자는 아픔에 대해 신음하면서 연기를 이어갔다. 연구자들은 이를 관찰하면서 과연 누군가가 도움을 줄 것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참가자를 시간의 압박에 따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이를 관찰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그룹의 63%가 넘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그룹의 90%는 그저 이들을 무시하고 분주히 움직이며 지나쳤다. 연구 결과는 참여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러 가는 상황이든 혹은 어떤 성격이든지와 상관없이 시간적 압박이라는 상황이 도움 행위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후속 연구를 진행했을 때도 신앙심, 도덕성 등의 요소보다 시간이라는 상황이 이들의 도움 행위를 결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쁨은 우리를 잡아먹는다
바쁨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유한함을 이야기한다. 비탄력적인 시간의 공급 아래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품고자 하지만 결코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특히 본문에 있는 성경의 구절처럼 일정으로 바쁜 제사장 혹은 레위인이라면 더더욱 누군가를 돌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분주함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많은 요소도 헤치고 있다. 분주함 속에 있는 상황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생각보다도 무표정으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 하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분주함의 특성은 우리의 기쁨을 망가지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다. 사실 분주함에는 함정이 있다. 앞만 보도록 하는 분주함은 우리에게 실존적 안도감을 주면서 우리의 삶이 공허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없게 이끈다. 그래서일까, 하루 종일 바빴던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다들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지 모르나, 대개 공허함이 들 것이다. 경쟁 사회, 비교 문화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서 얻은 물질적 유익은 있으나 모순적되게도 마음의 자산은 가난해진다. 그렇게 시간적 압박은 우리의 생명력을 조용히, 그리고 지그시 조르고 있다.
시간의 여백 속 함께함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돕거나 좋은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개인의 성격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성격이 다음의 요소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황이 우리의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상황에 지배받기에 우리는 수동적인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심리학은 오히려 이러한 인간의 경향성을 앎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됨을 알려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유한성을 인정할수록 자유로움이 증가한다. 타인을 도와주고,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스스로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점검할 때이다. 우리는 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우리는 선한 일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선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인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백의 미는 시간에서도 통하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함께 살아갈 때 경험할 수 있는 인간미를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의 시간에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비워 두는 것이 좋다. 그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덕, 여유다.
참고문헌
1) Darley, J. M., & Batson, C. D. (1973). From Jerusalem to Jericho: A study of situational and dispositional variables in help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7(1), 100–108. https://doi.org/10.1037/h0034449
2) 케빈 드영. (2025). 나는 왜 이렇게 바쁠까: 미친 듯이 바쁜 삶을 사는 당신에게 (강동현, 역). 구름이머무는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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