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슬픈 방어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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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현대 사회에서 ‘나는 사람이 싫다’라거나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다’라는 말은 쿨하고 세련된 취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일은 왠지 나약해 보이지만, 그것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핍을 드러내기보다 차라리 관계를 끊어냄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려는 태도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방어기제가 되었다.


최근 서점에 들렀을 때 마주한 베스트셀러들의 제목은 이런 심리를 더욱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거나 ‘둔감해져야 한다’는 조언들, 그리고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고 조종하려는 ‘다크 심리학’류의 책들이 매대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 우리가 배웠던 가치는 분명 타인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이웃을 배려하며 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가 마주한 세상의 정답은 사뭇 달랐다. 착하게 사는 것은 곧 ‘손해’를 보는 일이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먼저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야 한다는 서늘한 통찰이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크 심리학’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곳에는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욕망과 그 조종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공포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일각에서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되면서 자신이 당하고 있던 부당함을 깨닫게 된 것처럼, 이런 심리 기술이 나쁜 의도를 가진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지식이 심리 조작 범죄나 타인을 도구화하는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격과 방어라는 것이 결국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상대가 나를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기 위해 칭찬과 모욕을 교묘하게 섞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분명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다. 그러나 내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공격이 된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나만 모르면 당할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내가 가시를 두르지 않으면 저 사람이 나를 먼저 찌를 것이라는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방어를 위해 각자 더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준비한다.



우리가 이토록 날카로워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공통의 ‘가치’가 부재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업적 성공이나 금전적 성취 같은 세속적인 가치 외에 진정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공동체를 묶어주는 종교적 유대감도,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부양의 책임도, 혹은 숭고한 사랑의 가치도 희미해졌다. 또는 일본처럼 어떤 직업이든 그 다양성을 존중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것 자체를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적 토양도 부족하다. 공통의 가치가 사라진 자리는 오로지 효율과 결과라는 삭막한 지표들이 채우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하기보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기 쉽다. 타인을 나를 도와줄 도구 혹은 내 파이를 뺏어갈 경쟁자로만 인식할 때, 관계의 본질은 소통이 아닌 ‘전략’이 된다. 


여기에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촘촘하고 숨 가쁜 ‘과잉 연결’이 더해지면서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SNS와 메신저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며 자신의 효용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정서적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된다. 마음의 여유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모순을 눈감아주거나 모호한 태도를 선의로 해석해 줄 수 있는 심리적 자본인데, 가치가 부재하고 연결만 비대해진 오늘날 우리는 그 자본이 이미 바닥난 채 서로를 대면하고 있다.


우리가 서점에서 ‘까칠함’과 ‘조종’의 기술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안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이용당하고 싶지 않은 그 간절한 마음이 우리를 독한 이야기들로 이끈다. 하지만 모두가 방패 뒤에 숨어 창끝을 겨누고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안전은 존재할 수 없다. 


성숙한 사회란 가시를 세우지 않아도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신뢰가 흐르는 곳이다. 우리가 서점 매대에서 ‘독해지는 법’ 대신 다시 ‘함께 잘 사는 법’을 기웃거릴 수 있게 되려면, 공격을 위한 방어가 아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마음의 여유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중시하는 어떠한 가치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게 좋다는 쿨한 선언 뒤에 숨은 외로움을 직시하고, 타인이라는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사회적으로 생기게 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1) 권아현. (2025, 9월). 이것은 자기방어 기술인가? 가스라이팅 꿀팁인가? : SNS·서점은 ‘다크 심리학’ 열풍. 주간조선, (2877), 14-17.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2475363

2) 다크 사이드 프로젝트. (2025). 다크 심리학. 어센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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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5-07 14: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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