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읽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백채린 ]


[출처: 밀리의 서재 베스트지기]

우리는 왜 책 속에서 감정의 언어를 찾는가


서점에 들어서면 어렵지 않게 우리를 위로하려는 ‘괜찮다’, ‘잘하고 있다’는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몇 년간 힐링 에세이는 하나의 유행을 넘어 일종의 장르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출판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새로운 도서 열풍을 이끌어 꾸준히 소비되며 독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요즘 사람들이 너무 약해졌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왜 반복해서 비슷한 문장을 책에서 찾고, 또 그 말들에 마음을 기대게 되는 걸까.

 

힐링 에세이가 사랑받는 이유를 단순히 ‘위로받고 싶어서’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지점이 있다. 대부분의 힐링 에세이는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 현실을 극적으로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안도감을 느낀다. 이는 힐링 에세이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 명명(Affect Labeling)’이라 지칭한다. 정서 명명이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명명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언어화함으로써 부정적 정서를 보다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반대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 채 끙끙 앓기만 한다면 사람은 더 큰 혼란과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할 때 가장 큰 불안을 느낀다. 막연히 힘들지만 왜 힘이 드는지 알 수 없을 때 감정은 형태 없는 불안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감정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라며 공감과 위로가 담긴 글을 접했을 때, 감정은 비로소 정리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힐링 에세이가 주는 위안은 해결이 아니라 정상화되는 데 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감각은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경험으로 옮겨 놓는다. 읽히지 않는 시대에서 사람들이 감정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는 이유는 결국 글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힐링 에세이의 화자는 완벽하지 않다. 이들은 이전에 몇 차례 실패했고, 흔들렸고, 불안한 감정을 겪은 이들이다. 독자는 이 불완전한 경험의 목소리에 자신을 겹쳐 본다. 이는 공감과 동일시를 통해 감정을 나누는 과정이다. 누군가의 고백을 읽는 행위는 혼자만의 감정에 갇혀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타인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이 된다. 나아가 안정화되어 우리에게 힐링을 가져다주고자 하는 화자의 목소리에 기울임으로써 우린 안정감을 얻는다.


느려도 되는 공간, 다시 출발점으로


빠른 속도와 끊임없는 비교, 성취를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표현할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감정을 설명할 언어를 배우기보다, 감정을 관리하거나 억제하는 데 익숙해진 사회에서 힐링 에세이는 드물게 허용된 ‘느려도 되는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힐링 에세이를 찾는 행위는 단순한 도피일까, 혹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할까. 이에 대한 답은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힐링 에세이가 감정을 덮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위로는 금세 사라진다. 그러나 이 책들이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출발점이 된다면 위로는 감정의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위로가 자신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고 또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책은 여전히 혼자 읽는 매체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감정과 조용하고 깊게 연결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힐링 에세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말 대신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따뜻한 언어로 꾸며주기에 의미가 있다. 그 문장을 따라 읽으며 독자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힐링 에세이 열풍을 사람들이 더 나약해졌다는 증거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비춰보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잘 살아내고 싶어 한다. 다만 이제는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한 채 버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책에서 감정의 언어를 찾는 이유는 누군가 자신의 삶과 고통을 대신 살아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힐링 에세이는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좋은 말만 해주는 힐링 에세이의 달콤함에 매료돼 현실을 외면하게 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책들은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백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질문할 수 있는 시도만으로도 힐링 에세이가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충분한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최요원 and 이수정. (2004). 대학생의 정서인식의 개인차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9(4), 887-902.

2) 유온유. (2020). 정서 명명과 회피 전략이 부적 정서 감소에 미치는 효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범대학 교육학과(교육상담전공),

https://hdl.handle.net/10371/169913

3) 안다영,이혜진. (2017). 정서명명이 사회불안이 높은 대학생들의 발표불안 감소에 미치는 효과 : 예비연구. 인지행동치료, 17(4), 533-545.

4) 박상규. (2008). 감정표현에 기반을 둔 명상 프로그램이 대학생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13(4), 995-1007.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354
  • 기사등록 2026-05-27 18:24:3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