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40대 A씨는 경찰관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갔다. 그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된 이 사건은 단순한 엽기 범죄가 아니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거짓말을 반복한 그의 심리에는 범죄심리학이 오랫동안 주목해온 패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범인은 이미 증거가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부인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들은 자신이 들키지 않을 거라고 믿을까.
로버트 헤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반사회적 성격 연구에서 중요한 사실을 밝혔다. 범죄를 저지른 이후에도 발각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이유는 '자기 이익 편향(Self-Serving Bias)'과 결합된 과잉 자신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위험 범죄자 1000명 이상을 분석한 연구에서, 74.3%가 범행 직후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평가했다고 보고했다.
이 과잉 자신감은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에서 비롯된다. 시신을 유기하고, 알리바이를 만들고, 거짓말 시나리오를 촘촘히 짰다는 행위 자체가 뇌에 '나는 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실제로는 전혀 통제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리학자 엘런 랭어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1975년 연구에서 인간이 실제 통제권이 없는 상황에서도 통제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처음 정의했다. 범행 이후 범인이 보이는 '침착한 행동'은 용기가 아니라 이 환상의 산물인 셈이다.
A씨가 경찰의 전화에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것은 단순히 대담함 때문만이 아니다. 반복되는 거짓말은 스스로도 믿기 시작하는 '자기기만(Self-Deception)'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행동경제학과 교수는 2012년 연구에서, 같은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전전두엽의 도덕 판단 활동이 줄어들고 뇌가 그 말을 점차 '사실'로 처리하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범인이 부인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한 처벌 회피만이 아니라, 스스로 구축한 거짓 서사를 무너뜨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인 셈이다.
실제로 법무부 범죄분석 보고서(2023)에 따르면 국내 살인 사건 피의자의 61.7%가 1심 결심 전까지 범행을 부인했으며, 물증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부인을 지속한 비율이 38.2%에 달했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심리의 이면에는 피해자를 한 명의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비인격화(Dehumanization)'가 있다. 피해자를 없애야 할 '증거'로 바라볼 때, 시신 유기는 범인에게 논리적인 다음 단계가 된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악의 심리 연구에서 비인격화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을 극단적 행동으로 이끄는지를 수십 년에 걸쳐 분석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이 낯선 사람에 의한 범죄보다 잔혹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제욕이 극대화된 관계에서 상대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비인격화는 순식간에 완성된다. 이번 사건의 재판부도 '범행 수법과 피해 정도'를 2심에서도 엄중히 봤다는 점이 그 잔혹성을 가늠하게 한다.
범죄심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공포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험한 관계의 신호를 먼저 알아채기 위해서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태도, 감정을 차단한 듯한 반응. 이 신호들이 일상에서 반복된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서 관계 안에서 이런 패턴이 느껴진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여성긴급전화 1366이나 가까운 심리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해 보길 바란다. 알아채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보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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