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민
[한국심리학신문=안수민 (12sumin12@korea.ac.kr) ]
지난 3월, 난 새롭게 상담을 시작했다. 시험 불안, 완벽주의. 그것이 내가 상담실 문을 두드린 이유였다.
3회기의 상담을 마치며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했다. "넌 참 뭐든지 잘하는 것 같아." 나는 그 평가를 잃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했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밤잠을 설쳤다.
상담을 통해 깨달은 건 단순했지만 충격적이었다. 나는 지금껏 나라는 존재를 설명할 때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에 설레는지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는 것. 얼마나 생산적인지, 얼마나 쓸모 있는지만을 증명하려 애쓰며 나 자신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대하고 있었다는 것.
그로부터 몇 주가 흘렀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인지하는 연습을 시작했고 대중교통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담은 계속됐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실수에 대한 용납이 안 되네요. 벽에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상담이 계속되면서 나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었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 잘한 것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 그걸 알고 나서 상담사가 제안한 건 단순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느 날, 첫 회의를 망쳤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나는 혼자 중얼거려 봤다.
그럴 수 있지. 아니, 그럴 수 없다. 화난다. 그럴 수 있지. 근데 나한테 팀장을 맡겼잖아. 이렇게 못하면 안 되는데.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나 한심한 사람 같다. 노력도 안 하긴 했다. 그럴 수 있지.
나중에 친구가 이걸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냥 그럴 수 있지를 끼워놓은 거잖아."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단순히 끼워 넣을 뿐, 스스로에게는 진심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상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담사가 "그럴 수 있어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나는 곧바로 "그럴 수 없다"며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스스로에 대한 비판과 자괴감으로 빠져들었다.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벽에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안에 강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도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고 되뇌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걸.
상담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도 해보았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혼자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과외 학생에게는 "저 괜찮은 선생님이에요?"라고 물었고, 회의가 끝나면 "오늘 진행 괜찮았나요?"라고 확인했다. 사람들에게 "저 괜찮은 사람인가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늘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줬다. 맞다. 나만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난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고, 완벽하진 않아도 멋진 사람이었다.
변화한 것과 깨달은 것
그 무렵, 3회기 이후 찾은 즐거움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만큼은 해야 하는 것들을 잊었다.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피아노를 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루기 시작했다.
하루는, 마쳐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다. 대외활동 지원서와 원고. 나는 원고를 일요일로 미뤘다. 담당자에게 하루에 두 번이나 일정을 바꾸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찝찝하긴 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칠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상담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완벽하고 싶어 한다는 것,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 잘한 것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하고 싶은 걸 잊고 산다는 것. 상담을 통해 나는 내가 힘든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말해보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뤄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나를 지지해주려 애쓰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중이다.
앞으로의 과제: 행복이 무엇일까
나에게 남은 숙제는 행복이다.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완벽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그 끝에서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상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답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 질문이 무섭지 않다.
좀 더 나를 사랑할 때까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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