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가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술도 아니고 약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멈추기가 어려울까. 스스로에게 '의지력이 부족한 것 아닐까'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이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최근 한국을 찾은 미국의 중독 연구 전문가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중독은 특별히 나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쇼핑, 음식, 도박, 스마트폰까지. 중독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가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독을 '의지력 부족'의 결과로 바라본다. 하지만 신경과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노라 볼코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 전 소장은 중독을 '뇌의 보상 회로, 동기, 기억, 충동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만성 뇌 질환'으로 정의한다. 쉽게 말해, 중독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 뇌 안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기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뇌는 그 경험을 '기억하고 반복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문제는 스마트폰 알림, SNS 좋아요, 온라인 쇼핑의 '결제 완료' 화면 같은 현대 사회의 자극들이 이 회로를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건드린다는 점이다. 결국 뇌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2022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 신경과학과 애나 렘케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의 일상적인 행동 중독은 물질 중독과 뇌에서 거의 동일한 경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렘케 교수는 이를 '도파민 과부하 시대'라고 표현하며, 자극이 넘쳐나는 환경 자체가 중독 취약성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중독 연구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나는 해당 사항 없다'는 자기 면제 심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낙관 편향(optimism bias)'이라고 부른다. 나쁜 일은 남에게나 일어나고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뇌의 자동적인 착각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인지신경과학과 탈리 샤롯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약 80%가 이 낙관 편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중독이나 건강 위험과 관련한 자기 평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상 중독의 신호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온다. 특정 행동을 하지 않을 때 괜히 불안하거나 초조한 느낌이 든다면 첫 번째 경고다. 멈추려고 마음먹었는데 번번이 실패하거나, 그 행동에 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 두 번째 신호다. 그리고 행동 후 오히려 공허하고 후회스러운 감정이 반복된다면, 이것은 뇌가 보내는 세 번째 SOS다.
미국 중독의학회(ASAM)는 2023년 보고서에서 행동 중독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으며,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만 해도 전 세계 성인의 약 27%가 일상 기능에 지장을 줄 정도의 과의존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의 23.6%에 달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중독 연구자는 '중독의 범위를 알코올과 약물에 한정하지 않고, 도박, 섹스, 음식, 돈, 쇼핑, 소비 지상주의 전반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자체가 중독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심각한 지적이다. 앱 알림, 무한 스크롤, '오늘만 할인' 같은 마케팅 전술은 모두 도파민 회로를 겨냥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 미국 스와스모어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만족도가 낮아지는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 이론을 통해, 끊임없는 소비 욕구가 실제로는 더 큰 공허함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새로운 물건을 사고, 새로운 콘텐츠를 클릭하고, 또 다른 자극을 찾아 나서는 것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만족의 해소를 위해서일 수 있다.
통제력 상실이야말로 중독의 핵심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 없는 것 사이의 간격. 그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중독의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중독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회복의 첫 번째 원칙은 '완전한 중단'이 아닌 '인식'이다.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애나 렘케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도파민 단식'을 제안한다. 하루 중 특정 시간대에 스마트폰이나 SNS를 완전히 끊는 짧은 실험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2021년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루 단 30분의 스마트폰 단절 훈련을 4주간 유지한 그룹은 불안 지수가 평균 18.4% 감소했고 자기 통제감이 유의미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를 탓하기 전에, 한 번쯤 환경을 탓해봐도 좋다. 중독은 나쁜 사람이 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설계된 자극 앞에 인간의 뇌가 자연스럽게 반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잠들기 30분 전,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 작은 멈춤이, 당신의 뇌가 스스로를 되찾는 첫 번째 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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