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코스피가 8000선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 갑자기 백화점 쇼핑백이 손에 들려 있던 경험, 혹시 있지 않은가? 통장 잔고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명품 매장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지는 그 순간 말이다.
최근 국내 증시 강세와 함께 까르띠에 다무르 링이 품절되고 명품 소비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심리적 부의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고가 소비를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현상, 단순한 경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뇌 안에서 벌어지는 아주 정교한 심리 게임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는 자산 가치가 오르면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현상이 단순히 '돈이 생겨서 쓰는 것'이 아님을 강조해 왔다.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노버트 슈워츠 교수는 사람이 기분이 좋을 때 자신의 재정 상태를 실제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주가 상승 뉴스 하나가 기분을 띄우고, 그 기분이 '나는 여유롭다'는 착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착각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201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바버라 멜러스 교수팀이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자신의 투자 수익이 오른 것을 인지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즉각적인 소비 욕구가 평균 34.7% 높게 나타났다. 실제 현금을 손에 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은행 곽법준 거시분석팀장도 '주식투자로 인한 자본 이득이 주로 발생하는 계층은 중산층'이라며 '심리적 부의 효과가 극대화돼 패션, 명품 같은 고가 소비를 견인한다'고 밝혔다. 주머니 속 돈이 아니라 화면 속 숫자 하나가 소비 패턴 전체를 뒤흔드는 셈이다.
주가 상승이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데는 신경과학적 이유가 있다. 주식 수익을 확인하는 순간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경제학과 브라이언 너트슨 교수는 2001년 fMRI 연구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기대하거나 확인할 때 뇌의 측좌핵(nucleus accumbens) 활성화 패턴이 마약이나 음식에 반응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도파민 분출이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더 많은 쾌감을 원하게 되고, 그 출구 중 하나가 바로 소비다.
특히 명품 구매는 단순한 물건 사기가 아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지위 소비(Status Consumption)'라고 부른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라이언 후버트 교수팀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신호를 외부로 발신하려는 욕구는 내면의 불안감이 높을수록 강해진다고 한다. 내 계좌가 오른 건 기쁘지만 '이게 진짜 내 실력인가' 하는 불안이 동시에 생겨나고, 그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눈에 보이는 명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주식이 오른 날 까르띠에 링을 사는 것은 단지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나는 괜찮다'는 자기 확신을 물건으로 붙잡아 두려는 심리적 행위인 셈이다.
개인의 심리만이 아니다. 주가 상승기에는 소비 심리가 집단적으로 들뜨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한다. 1954년 레온 페스팅거 미국 미네소타대 심리학과 교수가 처음 제안한 이 이론은,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평가할 때 타인과의 비교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SNS에 지인의 명품 구매 인증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나도 여유가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실제로 국내 한 소비자 행동 연구에서 코스피 상승 구간 동안 SNS에서 명품 관련 게시물 노출 빈도가 늘어날수록 관련 소비 충동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51.8%에 달했다. '모두가 사고 있다'는 분위기 자체가 또 하나의 구매 신호로 작용하는 것이다. 내 통장이 아니라 남의 쇼핑백이 나를 충동질하는 이 구조, 생각해 보면 꽤 무서운 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사람은 돈의 출처에 따라 다르게 소비한다. 월급처럼 노동으로 번 돈은 아껴 쓰지만, 주식 수익처럼 예상치 못하게 생긴 돈은 심리적으로 '공돈'처럼 느껴져 훨씬 가볍게 쓰게 된다는 것이다.
탈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들은 복권 당첨금이나 투자 수익 같은 '횡재 수입'을 근로 소득보다 최대 2.3배 더 빠르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주가가 올라 계좌에 숫자가 늘었을 때 그 돈을 아직 실현하지도 않았는데 소비 욕구가 솟아오르는 것도 바로 이 심리적 회계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번 돈'과 '생긴 돈'을 철저히 다른 서랍에 담아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심리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전문가들은 주가 상승 뉴스를 접하거나 계좌 수익을 확인한 직후에는 큰 소비 결정을 최소 24시간 미루라고 조언한다. 도파민이 가라앉은 뒤에 판단해야 '감정적 소비'와 '이성적 소비'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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