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잠을 잘까?"라는 질문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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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이미지: Gemini 생성


어두운 밤, 조용히 강아지가 자고 있는 침대로 가보면 세상 모르게 색색 잠든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은 잠꼬대마냥 무언가를 꿍얼대기도 하고, 꿈속에서 들판이라도 달리는 듯 다리를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잠이라는 행위가 비단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종류의 동물들이 잠을 잘까? 혹시 잠이 전혀 필요 없는 동물도 존재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학계에서 조사한 모든 동물 종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잠을 잔다. 날아다니는 파리와 벌 같은 곤충부터 징그러운 바퀴벌레나 전갈 같은 절지동물도 잠을 자며, 물속에 사는 작은 잉어에서부터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인 거대한 상어에 이르기까지 모두 잠을 청한다. 양서류인 개구리나 파충류인 거북과 도마뱀 역시 마찬가지다.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을 가리지 않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잠은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잠을 잤는가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을까. 놀랍게도 지렁이처럼 원시적인 무척추동물이나 연체동물, 극피동물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잠을 즐긴다. 특히 지렁이의 조상이 지구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흔히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 불리는 약 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지구상에 척추를 가진 동물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잠이라는 행위가 존재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교과서나 영화에서 보았던 거대한 공룡들 역시 밤이 되면 모두 잠을 잤을 것이라고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수명이 고작 24시간을 간신히 넘기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단세포 생물이나 세균들조차도 잠을 잔다. 이들은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 낮에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밤에는 활동을 멈추는 비활성 시기를 거친다. 인간의 하루 주기 리듬이나 수면 체계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가 이미 세포 하나짜리 생명체 안에도 깃들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순간부터 잠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수면의 역사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진화학적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거대한 의문 하나를 조심스럽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원래 깨어 있는 상태에서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이라는 기능이 생겨났다고 믿지만, 어쩌면 지구 생명체의 최초 상태는 내내 잠들어 있는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즉 잠이라는 거대하고 기본적인 바탕 위에서 비로소 각성이라는 특이한 상태가 새로 출현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우리는 왜 자는가’가 아니라 ‘생물은 왜 굳이 깨어나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 역시 이 가설이 결코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몸집도 식성도 설명하지 못하는 수면 시간의 미스터리


잠이 모든 생물의 공통 분모라 할지라도 그 시간마저 똑같은 것은 아니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코끼리는 하루에 겨우 4시간 정도만 자도 멀쩡하게 생활하지만, 육식 동물의 제왕인 호랑이나 사자는 매일 15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낸다. 심지어 작은 포유류인 갈색박쥐는 하루의 대부분인 19시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겨우 5시간만 깨어 있다. 이처럼 동물의 세계에서 수면 시간은 종마다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 매달렸다. 당연히 동물의 몸집이 크거나 작아서, 혹은 초식 동물이냐 육식 동물이냐에 따른 포식자 지위 차이 때문에 수면 시간이 결정될 것이라 예측했다. 밤에 움직이는지 낮에 움직이는지의 여부도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상식선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그 어떤 요인도 동물들이 왜 이토록 다르게 자야만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내지 못했다. 어떤 규칙성도 발견되지 않는 수면 시간의 차이는 오랜 시간 과학계의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결국 연구자들은 잠의 총 시간이라는 단편적인 척도 자체가 잘못된 기준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동물마다 잠의 양이 아니라 잠의 질이 다를 것이며, 수면의 질이 월등히 높은 종일수록 짧은 시간만 자도 필요한 수면 욕구를 전부 충족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참으로 그럴듯한 발상이었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잠을 더 깊이 자고 연속성 있게 자는 종일수록 오히려 전체 수면 시간도 훨씬 길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은 동물들의 수면 지속성이나 바깥 세계에 반응하지 않는 정도만으로 잠의 질을 평가하기에 인간의 측정 기술이 미흡한 탓일 수도 있으므로,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수면의 질과 양 사이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진화의 여정에서 새로 출현한 꿈의 세계


모든 동물이 잠을 잔다는 명제가 모든 동물이 똑같은 단계를 거쳐 잠을 잔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잠은 크게 꿈을 꾸지 않는 깊은 단계인 비렘수면과 꿈을 꾸는 단계인 렘수면으로 나뉜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뇌를 청소하는 비렘수면을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곤충이나 양서류, 어류, 그리고 대부분의 파충류는 렘수면에 들어간다는 신호가 관찰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잠은 자되 꿈을 꾸지는 않는 상태로 밤을 보낸다.


이것은 진화의 거대한 시간표 속에서 꿈을 꾸는 잠이라는 단계가 비교적 나중에 새로 출현한 최신 기능임을 암시한다. 온전한 형태의 렘수면은 진화의 역사에서 나중에 등장한 조류와 포유류 계통에서만 뚜렷하게 관찰된다. 렘수면은 단순히 잠을 자는 것 그 이상으로 감정을 회복하고 정보를 연합하며 기억을 견고하게 다지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초기 생명체들이 겪었던 비렘수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더 고차원적이고 효율적인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진화가 선택한 특수한 장치가 바로 렘수면이다.


결과적으로 렘수면이라는 독특한 수면 단계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중 일부 고등 동물들만이 누릴 수 있는 진화의 선물인 셈이다. 물론 수생 환경에서 살아가는 돌고래나 고래 같은 일부 포유류들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와야 하므로 전신 마비가 동반되는 렘수면을 거의 취하지 않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육지로 돌아오면 다시 렘수면을 온전히 회복한다는 점에서 꿈꾸는 잠이 생존과 뇌 기능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방증한다.



여전히 수면의 세계는 현대 과학이 온전히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자 거대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 왜 수면 시간이 그토록 차이가 나는지, 그리고 뇌에서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잠이 발현되는지 우리는 아직 완벽한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하고 확실한 사실은 잠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존속하고 번영하는 데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잠은 생명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생존을 지탱해 온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다.



*참고 문헌

1) 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주)열린책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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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09 1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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