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원
[한국심리학신문=이예원(happymind0904@gmail.com)]
"술에 취해 사리분별이 힘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화를 참지 못해 그만…"
AI 이미지강력 범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바로 '우발적 범죄'라는 피고인 측의 변명이다. 대중은 이를 형량을 단 수개월이라도 줄여보려는 얄팍한 꼼수나 변호인의 기계적인 시나리오로 치부하곤 한다.
실제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이나 폭행 등 주요 강력 범죄에서 '우발적 범행'은 여전히 특별감경인자 혹은 일반감경인자로 작용한다. 범행의 고의성이 낮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보다 재범 가능성이 작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전에 흉기를 준비하지 않았다"거나 "말다툼 끝에 욱했다"는 정황만으로 우발성을 인정하는 관행은 늘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렇다면 심리학과 뇌과학이 정의하는 '우발성(Spontaneity)'과 '충동성(Impulsivity)'의 실체는 무엇일까. 감형을 위한 구호에 불과할까 아니면 인간 정신의 통제 불가능한 오작동일까?
우발적 범죄는 생각보다 훨씬 흔하다. 경찰청의 2020년 범죄통계에 따르면 살인 범죄자의 범행 동기 중 우발적 경우가 38.3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열 건 중 네 건꼴이다. 사전에 계획된 치밀한 살인보다 오히려 충동적 살인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AI 이미지폭력 범죄로 범위를 넓히면 음주가 더해진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를 기반으로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방화 사건의 34.11%, 살인의 29.25%, 폭력의 26.70%, 성폭력의 19.66%에서 주취 상태의 범행자가 확인됐다. 알코올은 충동 조절 능력을 무너뜨리는 가장 일상적인 매개체다.
한편 분노 조절 장애를 포함한 습관·충동 장애 진료 건수는 2016년 8220건에서 2021년 1만 980건으로 5년 새 33.58% 늘었다. 20대가 전체의 39%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18%로 뒤를 이었다. 충동 조절의 어려움은 특정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확산되는 현상이다.
우발적 범죄를 단순한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신경과학에 있다. 핵심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다. 전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며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뇌의 '브레이크' 역할이다. 신경범죄학 분야의 대표적 저작인 에이드리언 레인(Adrian Raine)의 연구는 충동적 살인범과 계획적 살인범을 뇌영상으로 비교했을 때 전전두피질의 대사 활동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계획적 살인범은 이 영역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충동적 살인범은 그렇지 않았다.
분노가 유발됐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구에 따르면 분노 자극이 주어졌을 때 반응적 공격 성향이 강한 폭력 범죄자들은 편도체와 내측 전전두엽 사이의 연결이 크게 약해졌다. 편도체는 감정과 공포 반응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즉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뇌의 감정 브레이크가 해제되는 것이다.
세로토닌과 테스토스테론도 빼놓을 수 없다. 한 교정치료 연구는 세로토닌이 충동성·공격성·행위 중독의 조절 능력과 깊이 연관되며 테스토스테론과 공격성의 관계는 전전두엽 기능이 얼마나 온전한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테스토스테론이 높아도 폭력성이 자동으로 높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충동조절 장애'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국내 KCI 등재 논문에 따르면 충동조절 장애는 충동으로 인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다가 해로운 행동을 통해 해소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으로 절도·폭행·상해·살인 등 다양한 범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충동성과 공격성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자 25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연구는 이들이 반사회성 유형·정신장애 유형·피해의식 유형으로 나뉘며 각각의 심리 구조가 범행의 양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줬다. 범행 동기가 불분명해 보이는 묻지마 범죄도 뇌과학과 심리학의 언어로 분석하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청소년 연구도 같은 구조를 확인해 준다. 국내 연구진이 중학생 332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충동성과 공격성이 직접적인 가해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죄책감이 완전 매개 역할을 했다. 충동적인 사람일수록 죄책감을 덜 느끼고 그 결과 행동 억제력이 더욱 약해지는 악순환 구조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충동 범죄자와 사이코패스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국내 실험 연구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비사이코패스 집단에 비해 전두엽 집행기능 수행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의 문제는 충동 조절 실패가 아니라 정서 인식 자체의 결함이다.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근본적으로 손상돼 있다. 이는 흥분 상태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충동 범죄자와는 전혀 다른 신경학적 구조다.
또한 미국 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Baumeister et al., 1998)의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에 따르면 자기 통제 능력은 근육처럼 사용할수록 소진된다. 극심한 스트레스나 장기간의 감정 억압 후에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우발적 범죄가 단순히 그 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누적된 심리적 상태의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뇌과학이 아무리 충동 범죄의 신경학적 실체를 규명해도 법정의 문제는 다르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서의 행위에 대해 감경 또는 면제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내 연구에 따르면 이 조항은 법정형 하한이 높은 형사특별법 사건에서 음주를 근거로 한 심신미약 감경의 '우회적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 45건을 분석한 연구는 더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계획된 살인'과 '잔혹한 수법'은 양형에 가중 요인으로 작용했고 '처벌불원'은 감경 요인이 됐다. 그러나 단순히 우발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감경이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우발성의 인정은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얘기다.
한편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범행 후 심신미약을 주장한 피고인 가운데 실제로 법원에서 인정받은 비율은 5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조두순 사건'처럼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반복적으로 부각되면서 심신미약 감형 자체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졌지만 실제 인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우발적 범죄를 뇌과학과 심리학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곧 면죄부를 주자는 의미는 아니다. 전두엽 기능이 저하됐어도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충동 범죄자와 계획 범죄자를 같은 방식으로 다루면 재범 예방에 실패한다. 충동성 기반의 범죄자에게는 전전두엽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한 신경학적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단순히 감옥에 더 오래 가두는 것이 해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공격성은 타고난 기질이지만 가정·학교·지역사회 환경이 이를 증폭시키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개인 책임과 사회 책임의 교차점을 찾아야 한다. "욱해서 그랬다"는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뇌과학은 그것이 때로는 진실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진실을 어떻게 법과 사회 시스템 안에서 다룰 것인가. 그것이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출처>
1. Baumeister, R. F., Bratslavsky, E., Muraven, M., & Tice, D. M. (1998). Ego depletion: Is the active self a limited resour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5), 1252–1265.
2. Duits, N., Raine, A., Goudena, P., & Doreleijers, T. (2019). Anger provocation increases limbic and decreases medial prefrontal cortex connectivity with the left amygdala in reactive aggressive violent offenders. Translational Psychiatry, 9, 1–10.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732149/
3. Raine, A. (2013). The anatomy of violence: The biological roots of crime. Pantheon Books.
4.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2022). 습관 및 충동 장애 진료 통계.
경찰청. (2020). 경찰청 범죄통계. https://www.police.go.kr/user/bbs/BD_selectBbsList.do?q_bbsCode=1115
5. 대검찰청. (n.d.). 범죄분석. https://www.spo.go.kr/site/spo/crimeAnalysis.do
6. 대법원 양형위원회. (2025). 양형기준 해설. https://sc.scourt.go.kr/sc/krsc/pdf/sc_explan_doc.pdf
7. 시사저널. (2018, October 18). 범행 후 '심신미약' 주장, 5명 중 1명꼴 인정받아. 시사저널.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100
8. 오세연. (2017). 분노범죄의 발생원인과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공안행정학회보,
9. 유시영, 이명수, 오강섭, 신영철. (2016). 신경범죄학: 뇌영상을 활용한 공격성 및 범죄 행동의 이해. 생물정신의학
10. 윤선영, 김나란, 임은지, 이수정. (2017). 묻지마 범죄자의 심리특성과 피해의식. 한국범죄학
11. 이명숙. (2019). 범죄인의 신경생물학적 기능손상과 교정치료. 교정담론, 13(1), 7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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