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사진 한 장이 만든 악몽…‘AI 조작 증거‘에 인간은 왜 그토록 쉽게 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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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사진 한 장이 만든 악몽…'AI 조작 증거'에 인간은 왜 그토록 쉽게 속을까?
  • 기사등록 2026-05-27 07: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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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사진 한 장이 만든 악몽…'AI 조작 증거'에 인간은 왜 그토록 쉽게 속을까?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삭제된 사진 한 장이 만든 악몽…'AI 조작 증거'에 인간은 왜 그토록 쉽게 속을까?


눈앞에 증거가 있다. 목소리가 들린다. 사진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믿는다. 의심 없이, 빠르게, 확신을 가지고. 그런데 그 증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배우 김수현을 둘러싼 AI 조작 음성·사진 논란은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경찰 수사 결과 고 김새론의 목소리를 AI로 조작한 가짜 증거가 확인됐고, 유튜버 김세의 대표가 구속됐다. BBC까지 이 사건을 보도하며 'AI 조작의 위험성'을 조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그토록 오래 믿었을까?



가짜를 진짜로 느끼게 하는 뇌: '진실 착각 효과'의 함정


인간의 뇌는 반복해서 접하는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진실 착각 효과(Illusory Truth Effect)'라고 부른다. 린 해셔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가 1977년 처음 규명한 이 현상은, 같은 정보를 여러 번 노출될수록 그 정보의 진위와 관계없이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수현 관련 의혹이 유튜브와 SNS를 통해 수개월간 반복 재생됐다는 점이 바로 이 효과를 극대화했다. 실제로 2015년 밴더빌트대 연구팀이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단 세 번의 반복 노출만으로도 허위 정보를 사실로 믿는 비율이 28.4% 증가했다. 내용이 아무리 황당해도 반복되면 뇌는 '익숙함'을 '진실'로 오해하기 시작한다.


특히 AI로 생성된 음성은 이 착각을 가속화한다. 목소리라는 감각 정보는 텍스트보다 감정적 신뢰도를 훨씬 높인다. 에릭 슐만 미국 UC버클리 인지신경과학과 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내용의 문자 정보보다 음성 정보를 37%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확증 편향과 도덕적 분노의 결합


문제는 단순히 속은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속고 싶었던' 측면도 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도덕적 분노가 결합한 결과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방향의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인지 왜곡이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기존의 불신이 있는 상태에서 그 믿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비판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즉각 수용한다.


더 나아가 도덕적 분노는 이 과정을 더욱 빠르게 만든다.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도덕적 분노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정보의 진위 확인 과정이 현저히 짧아진다'고 설명했다. 분노하고 있을 때 우리의 뇌는 검증보다 행동을 우선시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피해'라는 도덕적으로 민감한 키워드는 분노 회로를 즉각 활성화시키고, 그 순간 이성적 판단은 뒷전으로 밀린다.


실제로 사이버 불링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대상이 공인일수록, 그리고 고발 내용이 도덕적으로 강력할수록 대중은 사실 확인 없이 집단적 응징에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군중심리: 혼자라면 안 할 일을 함께하면 한다


온라인에서 집단으로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행동은 오프라인에서의 군중심리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구스타프 르봉이 19세기에 처음 제시한 군중심리 개념은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반응의 속도가 빠르며, '좋아요'와 '공유'라는 즉각적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2021년 MIT 미디어랩이 트위터 게시물 약 12만 건을 분석한 결과, 허위 정보는 사실 정보보다 6배 빠르게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분노나 혐오 감정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일수록 리트윗 속도가 더욱 빨랐다. 집단 안에 있으면 우리는 개인일 때보다 더 충동적으로 판단하고, 더 쉽게 가담한다.


BBC가 이 사건을 보도하며 '한국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잣대'를 언급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도덕적 기대가 높을수록 그 기대를 배신했다는 '증거'에 대한 분노도 강렬해지고, 군중의 결집도 빨라진다. 가짜 증거 하나가 한 사람의 경력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완성되어 있는 셈이다.



AI 시대, 우리가 길러야 할 심리 근육: 느리게 생각하는 능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전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사고를 두 가지로 나눴다. 빠르고 감정적인 '시스템 1'과 느리고 이성적인 '시스템 2'다. 우리가 SNS에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접할 때 대부분 시스템 1이 작동한다. 분노하고, 공유하고, 댓글을 달고 나서야 시스템 2가 '이게 사실인가?'라고 묻기 시작한다. 그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AI 딥페이크와 음성 조작 기술이 날로 정교해지는 지금,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해법은 기술적 도구만이 아니다. '느리게 생각하는 능력', 즉 강렬한 감정이 올라올 때 잠깐 멈추는 습관이 진짜 해독제다. 충격적인 영상이나 음성을 접했을 때 공유 버튼을 누르기 전에 딱 세 가지만 확인해 보자. 이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 원본이 확인됐는지, 나는 지금 감정적인 상태인지.


김수현 사건은 AI 기술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 뇌의 문제다. 오늘 타임라인에서 분노를 부르는 자극적인 게시물을 하나 마주치거든, 잠깐 스크롤을 멈춰 보는 것은 어떨까. 그 한 번의 멈춤이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가장 작은 실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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