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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기에서 졌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낯선 이들의 메시지가 수백 개 쌓여 있다. '죽여버리겠다', '네 아이도 가만 두지 않겠다'. 실제로 LA 다저스 투수가 최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 이후 이런 살해 협박을 받았다. 신생아 자녀에게까지 협박이 이어지면서 미국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다.
단순히 '도를 넘은 팬심'으로 치부하기엔 이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스포츠 베팅 시장의 급팽창과 SNS 문화가 맞물리면서, 전 세계 프로 선수들이 경기 결과 하나로 불특정 다수의 표적이 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도대체 이런 협박을 보내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금액의 이익을 얻을 때보다 손실을 입을 때 약 2.5배 더 강한 감정 반응을 보인다. 이를 '손실 회피 편향'이라고 한다. 스포츠 베팅에서 돈을 잃은 사람의 뇌는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물리적 고통에 가까운 신호를 받는다.
문제는 이 고통의 원인을 뇌가 '자신의 선택 실수'가 아닌 '외부의 누군가' 탓으로 돌리는 데 있다. 이를 '외부 귀인 편향'이라 한다.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한 선수가 눈앞의 표적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손실로 인한 분노를 가장 가시적인 원인 제공자에게 향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과학과 브라이언 넛슨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성인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뇌 영상 연구에서, 금전적 손실을 경험한 직후 편도체 활성화 수준이 평균 38% 높아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편도체는 공포와 공격성을 관장하는 뇌 부위다. 손실 직후 사람들이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는 이유가 신경과학적으로도 설명되는 셈이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존 숄러 박사가 2004년 제안한 '온라인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 이론은 지금도 사이버 폭력 연구의 핵심 개념으로 쓰인다. 익명성, 비가시성, 즉시성이 결합되면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게 된다는 것이다. 화면 너머의 상대를 실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처럼 인식하게 되는 탈인격화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스포츠 SNS 환경은 이 현상을 더욱 가속화한다. 수만 명의 팔로워가 비슷한 분노를 공유하는 공간에서, 개인의 공격적 발언은 '집단적 정의 실현'처럼 포장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가 202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 관련 악성 댓글의 62%가 베팅 결과 발표 후 3시간 이내에 집중 게시됐다. 단순한 야유가 아니라 금전적 분노가 직접적인 촉발 요인이라는 증거다.
여기에 '도덕적 분리(Moral Disengagement)' 기제도 작동한다. 캐나다 앨버타대 심리학과 앨버트 반두라 명예교수가 제시한 이 개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공격적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 선수 때문에 내 돈이 날아갔다'는 식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구성해낸다. 이 순간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당연한 항의'처럼 느껴진다.
협박을 받은 선수들은 어떻게 될까. 영국 스포츠심리학자 나이절 리들리 레스터대 스포츠과학과 교수팀이 2022년 프로 선수 84명을 인터뷰한 연구에서, 온라인 협박을 경험한 선수의 71%가 수면 장애와 집중력 저하를 호소했고, 41%는 '경기장에 나가기 두렵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준하는 증상들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가족을 향한 협박은 선수 본인을 향한 것보다 심리적 타격이 훨씬 크다. 자신을 지켜야 할 대상에 대한 위협은 '과각성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발해, 선수가 경기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번 다저스 사건에서 신생아 자녀까지 협박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도덕성에만 기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임상심리학회(APA)는 2024년 보고서에서 스포츠 베팅 광고 노출이 많을수록 손실 후 공격적 온라인 행동이 증가한다는 상관관계를 확인했다. 플랫폼이 협박 계정을 즉각 차단하고, 베팅 업체가 손실 직후 이용자의 SNS 행동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방식의 구조적 개입이 논의되고 있다.
스포츠 결과에 베팅을 하고, 경기를 보고, 분노를 표출하는 이 일련의 흐름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패턴이 되어버렸다. 다음번 경기를 보기 전에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좋겠다. 나는 지금 경기를 즐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잃은 돈을 누군가에게 돌려받으려 하고 있는 건지.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화면 너머 실존하는 누군가의 삶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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