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채린
[한국심리학신문=백채린 ]
지난 6월 4일, 수험생들의 6월 모의고사가 치러졌다. 평가원 모의고사의 단계를 거치고 끝없어 보이는 입시의 길을 지나 마침내 11월에 치러질 수능이 다가온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시험장에 들어선다. 그러나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바랐던 점수보다도, 예상했던 점수보다도 훨씬 낮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목표로 삼았던 대학 대신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되기도 한다.
AI 생성 이미지: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과 입시가 끝난 이후 진학한 대학을 끝내 자신의 자리로 인정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직전에 본 시험보다도 훨씬 떨어진 점수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더 아래의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자신의 위치를 부정한다. "내가 고작 이런 학교에 다닐 리가 없어", "나는 원래 더 높은 곳에 갈 사람이었어", "이 사람들과 나는 동급이 아니야"와 같은 생각으로 현재의 현실과 거리를 두며,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러한 심리를 단순한 허세나 오만함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란 자신이 가진 신념과 실제 현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공부해 온 학생들에게 성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성적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게 하는 정체성의 일부이자 평가의 토대가 된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다", "나는 명문대에 갈 사람이다"라는 믿음은 수년간의 경험과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즉 이러한 현실 부정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자기 정체성과 현실 사이에서 발생한 인지부조화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현실과 충돌할 때 사람은 현실을 수정할 수 없기에 인식을 수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믿음과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실제 결과가 충돌하면 사람은 큰 심리적 불편을 느낀다. 하지만 이미 나온 성적과 입시 결과는 바꿀 수 없다. 현실은 수정할 수 없기에 사람은 그 대신 인식을 수정하려 한다. 그래서 "실력보다 못 봤을 뿐이다", "운이 나빴다", "원래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와 같이 자기 위안을 하며 심리적 균형을 되찾으려 한다.
사람에게는 성공은 자신의 능력 덕분으로, 실패는 외부 환경 때문으로 탓을 돌려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심리적 장치다. 수능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학생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자신이 생각해 온 가치와 능력을 단 한 번의 결과만으로 부정당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선 자신을 타인들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자기고양 편향(self-enhancement bias) 역시 작용한다. 이러한 자기고양 편향은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입시의 실패로 떨어진 자존감을 보호하고자 스스로 현재의 위치를 부정한 것이다. 자기고양의 편향 안에는 자애(自愛)적 성격이 내재해 있다. 자애적 성격의 소유자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대인관계에 있어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이 많은 경향을 보인다. 은연중에 타인을 낮춰보고, 거만한 태도와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착취성과 과시행동을 드러내며, 이상적 타인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애적 욕구를 충족하려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잘난 척’ 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감도가 낮고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물론 누구나 실패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심리가 현재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기회들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현재의 대학 생활을 의미 없는 시간으로 여기거나 끊임없이 과거의 결과만 곱씹는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우리는 입시를 지나치게 절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경로와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 이름만으로 한 사람의 미래가 결정되던 시대는 점차 지나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대학 입학 이후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배우며, 어떤 역량을 쌓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그러니 상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의 위치가 곧 자신의 한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장의 시작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느냐에서 출발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의 길은 열려있다. 시험은 인생의 중요한 관문일 수는 있어도, 우리의 가능성과 무궁한 미래를 재단하는 최종 결론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너무 가혹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참고문헌
1) 백수경 and 고재홍. (2007). 자기고양편향이 행복감과 인기도에 미치는 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사회및성격, 21(1), 89-104.
2) Belinda Boyd Wilson & Frank Walkey. (2015) The Enlightenment Scale: Further Evidence for Validity. Journal for the Study of Spirituality 5:2, pages 12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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