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희
[한국심리학신문=조찬희(byliner_cho@naver.com)]
야구는 흔히 기록의 스포츠로 불린다. 그러나 기록의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흔들리는 투수의 손끝, 무너지는 자신감, 압박 속 선택의 순간들. ‘다이아몬드 위의 심리학자들’은 야구 속 숨겨진 인간의 마음을 따라간다.
이 연재는 다이아몬드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
“번트나 투수 교체 등 수많은 작전들이 성공한 적도 있지만, 실패한 적도 많았다. 감독이 욕을 많이 먹어야 한다. 감독이 욕을 안 먹으려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면 안된다. 그런 것은 감독이 감수하고 해야 하는 일이다. 이기면 선수 덕분, 지면 감독 탓인 것이다. 감독이 두려워하면 안 된다.”
김기태 한화 2군 타격코치가 LG 감독 시절 진행한 인터뷰 중 일부이다.
일주일에 6번 펼쳐지는 경기, 그리고 한 경기당 수십 번씩 찾아오는 결단의 순간에 야구 감독이 외로이 서 있다. 투수 교체 타이밍, 대타 기용, 작전 지시 등 감독의 말끝에서 나오는 결정이 팀의 한 경기 승패, 크게는 한 시즌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다. 프로야구 감독은 매일 100가지 경우의 수를 견디는,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틀릴 수도 있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을 마주한다.
수천, 수만 명의 관중과 미디어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자리. 수많은 변수 속에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하는 감독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감독들은 이 극심한 선택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는가. 김기태 감독이 강조하는 ‘욕 먹을 용기’는 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글은 다이아몬드 옆 더그아웃의 심리학을 파헤쳐 보려고 한다.
다이아몬드 위 선택의 순간에서 감독이 가장 먼저 맞서야 할 상대는 비난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손실 회피 경향(Loss Aversion)이다. 손실 회피 경향이란 이스라엘 국적의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엘 카너먼(Daniel Kaneman)이 도입한 개념으로 이익의 가치보다 손실의 가치를 크게 평가하는 인간의 경향성을 말한다.
감독에게 가장 큰 손실은 경기 패배와 패배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팬들의 비난이다. 경기를 패배한 날, 밤새 쏟아지는 날카로운 비난을 받아야 되는 감독의 뇌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이 방어 기제가 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다가온다. ‘지지 않으려는 경기 운영’을 하는 감독에게 승리는 없다. 손실 회피 경향은 감독의 승부수를 지워버린다. 최대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도모하며, 손실 회피를 위해 선택을 내릴 때 감독은 데이터나 기존 매뉴얼 뒤로 숨어버린다. 혹여나 그 경기를 패배하더라도 ‘데이터를 따르는 상식적인 야구’였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명분을 만든다.
2020년대 야구는 세이버 매트릭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야구이다. 시즌 최다 피안타를 기록하고 있던 선발 투수가 8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내고, 그 퍼펙트를 쉽게 아웃될 것만 같던 통산 20안타의 타자가 깨뜨리는 것이 야구이다. 매 순간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세계가 야구이다. 실패의 책임이 두려워 내리는 방어적인 결정은 정작 승부처에서 가져야 할 과감한 결단력을 지우고, 감독의 스트레스만 가중시키는 심리적인 덫이 된다.
김기태 감독이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경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은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 감독은 손실 회피 경향에서 벗어나 위험 감수 경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위험 감수 경향은 모든 순간에서 도박수를 던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결정에 대한 실패 가능성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인지적 재프레이밍(Reframing)이다. 감독이 손실 회피 경향에서 벗어나 ‘욕 먹을 용기’를 가졌을 때, 세이버 매트릭스가 빛을 발하고 다이아몬드 위 100가지의 경우의 수를 냉정히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감독의 ‘욕 먹을 용기’는 감독 개인의 인지적 시야를 확장시킬 뿐 아니라, 선수단 전체의 기류를 바꾸는 데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기면 선수 덕분, 지면 감독 탓’이라는 조금은 억울할 수 있는 문장은 선수단 내에 강력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으로 작용한다.
미국 국적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리더십 교수인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에 의해 처음 소개된 심리적 안전감은 조직 내에서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말한다. 조직 구성원이 불안함 없이 업무에 집중하고 성과를 내며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야구 경기 중계를 시청하다 보면 캐스터나 해설위원이 두려움 갖지 말고 과감하게 플레이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자신감이 떨어져 소심해진 선수는 플레이가 위축되고 몸이 더 긴장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내가 여기서 실패하면 비난의 화살을 맞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수행 불안(Performance Anxiety) 또는 압박감으로 인한 수행 마비(Choking) 현상이라 부른다. 멘탈이 신체를 지배하는 야구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선수의 플레이에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러나 ‘지면 감독 탓’이라는 감독의 한 마디가 있다면, 선수들의 심리 매커니즘은 완전히 뒤바뀐다. 실패의 책임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중압감을 감독이 대신 막아줌으로써 선수는 오직 내가 던질 1구, 내가 타격할 1구, 내가 수비할 1구에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감독의 ‘욕 먹을 용기’는 선수 개인의 불안을 신뢰와 대담함으로 바꿔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을 만들며, 강력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장착시키는 최고의 리더십 전략이 된다.
다이아몬드 위 감독만 매일 밤 100가지 경우의 수를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다이아몬드인 직장에서, 학업에서,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매 순간 선택을 내리고 그 결과의 중압감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삶이라는 선수단의 감독이다.
이직을 고민할 때,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할 때 우리는 감독 못지 않은, 혹은 감독보다 더 극심한 선택 스트레스와 마주한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찾아올 타인의 시선과 조롱이 두려와 정작 자신이 원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곤 한다. 실패로 인해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남들이 이미 다져놓은 평평한 길을 따라간다. 그러나 지지 않는 경기 운영이 팀의 패배를 야기하듯, 우리 역시나 실패가 두려워 방어적인 선택만 고집한다면 인생이라는 길고 긴 경기에서 내가 원하는 성과를 거머쥘 수 없다.
그렇기에 이 기사의 첫 문단, 김기태 감독의 ‘감독이 두려워 하면 안 된다.’라는 문장은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와 타인의 비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현재의 선택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과감히 ‘욕 먹을 용기’와 함께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경기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는 침체에 빠져 있는 롯데 선수단에게 NO FEAR 정신,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두려움 없이 공을 뿌리고, 두려움 없이 스윙할 것.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성공 방법이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감독이 된 이상, NO FEAR 정신을 가져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스윙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우승으로 이끌 심리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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