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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무하마드 알리는 손이 떨렸다. 한때 나비처럼 날고 벌처럼 쏘던 그 손이, 말년에는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프로레슬러 크리스 벤와는 경기 도중 수십 번 머리를 부딪히며 쌓인 뇌 손상으로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이 두 이야기는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셀럽병사의 비밀'에서 MC 이찬원이 직접 소개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왜 이들은 멈추지 않았을까. 몸이 부서져 가는 신호를 받으면서도, 링 위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은 이 질문에 꽤 불편한 답을 내놓는다.
스포츠 선수들이 부상을 감수하면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심리학 개념 중 하나가 바로 '행동 중독(behavioral addiction)'이다. 승리와 관중의 환호는 뇌의 보상 회로를 강하게 자극하며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마크 그리핀 영국 노팅엄트렌트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9년 엘리트 운동선수 24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들 중 34%가 운동 중독의 임상적 기준을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 도파민 회로가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작은 승리로도 충분하던 보상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무대와 더 강렬한 경쟁 없이는 채워지지 않게 된다. 알리가 은퇴를 선언하고도 다시 링으로 돌아온 이유, 벤와가 주치의의 경고에도 경기를 강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특히 정상급 선수일수록 이 함정에 더 깊이 빠진다. 전미스포츠심리학회(AASP)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대표급 선수의 51.8%가 '경기를 쉬는 것보다 부상을 참는 편이 심리적으로 더 편하다'고 응답했다. 쉬는 것 자체가 더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스포츠 선수의 무리한 복귀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은 '운동선수 정체성 과잉 동일시(athletic identity foreclosure)'다. 브리트 타젯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2020년 연구에서, 자신을 '선수'라는 역할에만 극단적으로 동일시한 선수일수록 부상 후 복귀 결정을 더 무모하게 내리고, 은퇴 후 우울증과 불안장애 발생률이 일반인 대비 2.3배 높다고 밝혔다.
링 밖의 나, 코트 바깥의 나를 상상하지 못하는 선수에게 경기를 포기하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를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선수다'라는 문장이 곧 '나는 존재한다'는 문장과 같아져 버린 것이다.
크리스 벤와의 사례를 사후 분석한 신경과학자들은 그의 뇌에서 심각한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을 발견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뇌 손상만큼이나 그를 링으로 계속 불러들인 정체성의 공백에 주목한다. 경기장 밖에서 자신을 정의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스포츠 세계에는 오래된 문화적 코드가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건 약한 것'이라는 암묵적 규범이다. 게리 와이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스포츠사회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2022년 미식축구, 레슬링, 권투 선수 330명을 인터뷰한 결과, 응답자의 78.3%가 '통증을 팀원이나 코치에게 숨긴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팀에서의 입지를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오랜 훈련을 통해 형성된 감각 둔화도 작용한다. 고강도 훈련을 반복하면 뇌는 일정 수준의 통증 신호를 '정상 범주'로 재설정한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은 실제로 위험한 수준의 부상을 '그냥 참을 만한 통증'으로 인식하게 된다.
알리의 파킨슨병이 반복적인 두부 충격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이미 의학계의 정설이 됐다. 하지만 그가 현역 시절 받은 충격들을 '별것 아닌 것'으로 견뎌낸 배경에는 이 감각 둔화와 강인함을 미덕으로 삼는 집단 문화가 함께 작용했다.
이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관중, 즉 우리다. 데이비드 레이시 영국 레스터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2018년 논문에서 관중의 기대와 환호가 선수의 고통 표현을 억압하는 '사회적 감시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수만 명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순간, 부상 신호는 뇌에서 일시적으로 더욱 강하게 억제된다.
우리는 영웅을 원한다. 쓰러지지 않는 선수, 아픔을 이겨내는 챔피언을 보며 감동받는다. 하지만 그 감동의 이면에서 누군가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셀럽병사의 비밀' 같은 프로그램은 정면으로 건드린다.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승리만큼이나 선수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에도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오늘 좋아하는 선수가 경기를 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쉬냐'는 아쉬움보다 '잘 쉬어라'는 마음을 먼저 떠올려 보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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