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안 갈 거야?" 위험 신호도 막아선 말…아이들은 왜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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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좋은 대학 안 갈 거야?" 위험 신호도 막아선 말…아이들은 왜 무너지는가


아이가 '힘들다'고 말했다. 부모는 그 말 대신 다른 말을 골랐다. '지금 힘들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이는 그 이후로 입을 다물었다. 힘들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골랐다. 그리고 혼자 버텼다.


최근 보도된 사례처럼, 정신건강 위기 신호를 보낸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외면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신과 병력이 대입과 취업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이를 살리는 손길을 가로막는다. 도대체 왜 우리는 아이의 SOS를 외면하게 되는 걸까.



고통을 숨기게 만드는 구조: '낙인 효과'가 아이의 입을 닫는다


심리학에서 '낙인 효과(stigma effect)'는 특정 상태나 행동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꼬리표가 붙을 때, 당사자가 그 사실을 숨기거나 도움을 회피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정신건강 분야에서 이 효과는 특히 치명적이다. 패트릭 코리건 미국 일리노이공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2014년 성인 및 청소년 3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건강 낙인을 강하게 인식하는 집단일수록 전문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평균 11년이 더 걸렸다.


한국은 이 낙인 효과가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다. '정신과 기록이 남는다', '취업 때 걸린다', '군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한다. 실제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을 꺼리는 이유 1위로 '주변의 시선과 기록에 대한 두려움'이 51.8%를 차지했다.


결국 아이는 선택한다. 아프다는 말을 꺼냈다가 엄마아빠가 걱정할까봐, 선생님이 이상하게 볼까봐, 기록이 남을까봐. 그래서 '그냥 괜찮아'를 선택한다. 그 침묵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신호를 차단한다: 감정 조율 실패의 심리학


부모가 아이의 고통 신호를 외면하는 것은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 자신의 불안이 너무 클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다이앤 에렌사프트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 소아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불안의 전이(anxiety transmission)'로 설명한다. 부모가 아이의 힘든 감정을 직면했을 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서면, 그 감정을 최소화하거나 합리화하는 방어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힘들면 어떻게 하려고', '다른 애들도 다 힘든데 너만 그러냐'는 말들은 사실 아이를 야단치려는 의도가 아닌 경우가 많다. 부모 자신이 그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혹은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이다. 문제는 아이 입장에서 그 말이 '네 고통은 별거 아니다'라는 메시지로 수신된다는 점이다.


존 가트맨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수용하고 이름 붙여주는 '감정 코칭'을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와 또래 관계, 정서 조절 능력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 2019년 아동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추적 연구에서 이 차이는 33.1%에 달했다.



학교도 외면한다: '성적 관리'라는 이름의 침묵 공모


가정뿐이 아니다. 학교 역시 비슷한 구조적 압박 속에 놓여 있다. 교사가 위기 학생을 발견해도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우려한 학부모의 반발, 학교 이미지 관리, 행정 절차의 복잡함이 개입을 늦춘다. 청소년 정신건강 전문가인 신의진 연세대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는 '학교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공간인지, 성적 관리를 위한 공간인지 혼란스러운 시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 청소년 정신건강 실태조사(2023년, 교육부·보건복지부 공동)에 따르면, 우울 또는 불안 증상을 경험한 중고등학생 중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은 비율은 14.7%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혼자 또는 주변 친구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위기 신호를 보낸 청소년 중 학교에서 공식적인 개입을 받은 경우는 더욱 낮아 11.3%에 그쳤다.


아이들은 혼자서 버텼다. 용돈을 모아 병원을 찾고, 인터넷으로 심리 검사를 받고, 익명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어른들이 외면하는 동안 아이들끼리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오늘 아이에게 다시 물어볼 것: 작은 질문 하나가 만드는 차이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거창한 개입이 아닌 '작은 질문'의 힘이다. '요즘 어때?'가 아니라 '오늘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야?'처럼 구체적이고 열린 질문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조앤 로저스 미국 존스홉킨스대 아동청소년정신과 교수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서, 부모가 일주일에 3회 이상 아이의 감정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건넸을 때 아이가 정신건강 위기를 스스로 표현할 가능성이 2.7배 높아졌다.


낙인을 없애는 것은 제도만의 몫이 아니다. 집 안의 대화 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신과 가는 게 이상한 게 아니야', '힘들면 말해도 돼, 나는 네 편이야'라는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구명줄이 될 수 있다. 오늘 저녁, 아이와 나란히 앉아 '요즘 뭐가 제일 힘들어?'라고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질문이 아이가 처음으로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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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11 07: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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